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 겨우내, 나는 어미 고양이 자유와 새끼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기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농장에 나가야만 했다. 갑자기 한파가 몰아치거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을 때는 만신 귀찮은 생각에 뭉그적거리다가도 그래, 너희들도 먹고살아야지 하는 애잔한 마음에 농장에 가서 사료와 물을 챙겼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는 동안 세 마리의 새끼고양이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그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크고 호기심 충만한 검은 고양이는 이천으로 귀촌한 선배의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없어진 걸 단박 눈치챈 자유는 새끼를 찾아 종일 야옹거리며 하우스 주변을 뱅뱅 훑고 다녔다. 그러던 그 날 밤, 자유는 하우스 문 앞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길게 늘여 빼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새끼를 잃은 어미 고양이의 곡소리가 어찌나 절절한지 꼭 사람이 우는 것만 같았다. 

다음 날도 자유는 하우스 주변뿐만 아니라 새끼고양이가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그래도 새끼를 찾지 못한 자유는 하우스 안에 새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하우스 문짝을 박박 긁으며 야옹야옹 울었다. 보다 못한 내가 문을 열어주자 자유는 하우스 안의 좁은 틈까지 뒤져가며 쉴 새 없이 새끼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렇게 한 시간은 좋이 하우스 안에서 새끼를 찾던 자유는 낙담한 발걸음을 하우스 밖으로 옮기더니 다시금 새끼를 찾아 주변을 배회하고 다녔다. 

농장의 마스코트였던 어미고양이 '자유'.
농장의 마스코트였던 어미고양이 '자유'.

한 달 가까이 새끼를 잃어버린 비통함에 빠져있던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남은 새끼 두 마리를 보살펴야 한다는 자각을 했는지 돌연 태도를 바꿔서 새끼고양이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새끼들과 함께 천지사방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내가 며칠씩 농장을 비워 사료가 떨어지면 비둘기나 쥐를 사냥해서 새끼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봄꽃이 만발할 무렵 새끼 고양이들은 완전히 성체가 되었고 자유는 중년 부인처럼 의젓해졌다. 그러자 새끼 고양이들의 아빠로 짐작되는 고양이가 다른 수컷과 함께 농장에 드나들었고, 자유와 새끼들은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우리는 저러다 금방 새끼를 밸 텐데 내심 걱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문득, 자유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놈이 새끼들을 놔두고 정분이 났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자유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사고를 당했나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가 초조한데 자유는 사라진 지 일주일 만에 새끼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두어 시간 새끼들 곁에 머물던 자유는 또다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래도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어미가 종적을 감추었는데도 새끼 고양이들은 이리저리 나는 듯이 뛰어다니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 어슬렁어슬렁 다시 나타난 자유는 한 시간 남짓 새끼들 곁에 머물다가 작별을 고하듯이 잠깐 뒤를 돌아보고는 껑충껑충 숲 쪽으로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암컷이었던 새끼 한 마리도 새로운 거처를 찾아 홀연히 떠나갔고 농장에는 의젓하게 자란 청년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았다.

새끼들을 위해 피눈물을 머금고 멀리 떠나갔을 자유의 빈자리를 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는 이치는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지고, 나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자유를 생각하면서 남은 고양이에게 치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미의 터전을 물려받은 고양이 '치즈'.
어미의 터전을 물려받은 고양이 '치즈'.
어미의 터전을 물려받은 고양이 '치즈'.
어미의 터전을 물려받은 고양이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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