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부터 60대까지 파크골프 '삼매경'
은빛공원에 마련된 초록매트
어르신들 최고 놀이터로 각광
9홀 한 바퀴 도는데 7000보
회원들 “아픈 곳 통증 잊어”
[고양신문] 딱, 소리 뒤에 또르르르 공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오! 살았다.” 한 골퍼가 경기를 시작하는 티샷에 안도했다. 엉뚱한 곳으로 공이 굴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력 많이 늘었어.” 티샷을 지켜본 다른 골퍼의 칭찬이 곧바로 이어진다.
지난 22일 덕양구 화정동의 은빛공원에 모여 파크골프를 치는 이들은 모두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 약 20명의 어르신들은 나무숲 사이로 펼쳐진 초록매트에서 삼상오오 모여 진지하게 파크골프 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날 한여름에 근접한 날씨였지만 파크골프장에는 그윽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가 있어 어르신들은 큰 더위를 느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파크골프는 어르신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생활스포츠가 됐다. 경기 방식은 기존 골프와 비슷하지만 잔디 위에 공을 굴리듯이 진행하는 방식은 게이트볼과 비슷하다. 기존 골프 보다 배우기도 쉽고 비용 부담도 적어 어르신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 체력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는 데다, 본인과 상대의 타수를 기억해둬야 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좋다.
파크골프의 인기는 고양에도 전해졌다. 덕양구 화정동의 은빛공원 안에 위치한 ‘화정파크골프장’은 전국적인 파크골프 붐이 일기 훨씬 전인 지난 2004년 조성됐다. 정발파크골프장, 성저파크골프장, 중산파크골프장, 삼송파크골프장 등 고양시에 있는 5개 파크골프장 중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이 바로 화정 파크골프장이다. 화정파크골프장은 9개 홀로 구성됐다. 총 거리는 378m이고, 각 홀 간 거리는 37~52m로 조금씩 다르다. 화정파크골프클럽 초창기 회원인 이흥우(76세) 고양시파크골프협회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도입된 파크골프장 중에 세 번째로 도입된 골프장이 이곳 화정파크골프장”이라고 설명했다.
화정파크골프장이 오래된 만큼 동호회의 역사도 오래됐다. 화정파크골프클럽은 회원 수가 약 80명을 헤아리는데, 80대 회원들이 주축이고, 90대 회원도 4명이나 된다. 80대 회원이 ‘어린애’라고 부르는 70대 회원이 가장 적다. 요즘 워낙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이 부쩍 늘다보니 70대는 아예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화정파크골프 회원들은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시간을 정해 파크골프를 즐긴다.
이흥우 사무국장은 “회원 80명 중에 여성분들이 50명 정도 된다. 80대가 가장 많은데, 그 중에서도 1936년, 1937년생들이 20명 정도로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9홀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정도 걸리고 약 7000보 걷는다. 보통 두 바퀴를 돌지만, 많이 걷는 분들은 하루에 4바퀴까지도 돌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 어르신들의 파크골프 붐으로 회원이 늘어나긴 했지만 화정파크골프클럽에는 초창기 회원들이 많다. 그 중에 한 명인 김치조(93세) 어르신은 6·25전쟁 참전용사다. 회원들은 김 어르신에게 대부분 ‘선생님’으로 주로 불리우고 있다.
15년 동안 이곳에서 파크골프를 쳤다는 이정숙(85세) 어르신은 골프채를 지팡이 삼아 골프장을 거닐고 있었다. 이 어르신은 “골프를 치기 전에 협착증을 앓았다. 골프를 치니까 허리 통증이 덜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클럽에서 가장 젊은 이명복(69세) 어르신은 연장자들과 함께 골프를 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언니, 오빠들이 모두 저를 좋게 보아주신다”고 웃어보였다. 이 어르신은 파크골프의 매력에 대해 “그냥 걷기운동을 하는 것보다 내가 친 공을 따라 걷는 것이 훨씬 더 즐겁다”고 말했다.
화정파크골프장은 어르신들의 최고의 놀이터가 되고 있지만 아파트 입주민들과 갈등도 없지 않다. 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아파트 주민과의 갈등이다. 30년 이상 공직에 있었던 김광현 어르신은 “이곳은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개의 산책로이기도 하다. 개 주인들이 민원을 넣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개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