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

현대조각의 대가 민복진 작품 200여 점 소장
모자상, 가족상… 익숙하고 친근한 작품세계
티켓 한 장으로 길 건너 장욱진미술관도 관람

[고양신문] 고양에서 가까운 양주 장흥계곡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3월 개관한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은 한국 현대조각의 초석을 다진 대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조각가 민복진(1927~2016)의 작품세계와 예술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미술관이 자리한 곳은 경기 북부의 대표적 문화 명소로 명성이 자자한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과 길(권율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두 곳 미술관 사이에 물 맑은 석현천 계곡이 흐르고, 미술작품으로 가득한 야외 조각공원도 자리하고 있다. 

야외조각공원에서 장욱진미술관으로 넘어가는 석현천 다리.
야외조각공원에서 장욱진미술관으로 넘어가는 석현천 다리.

고맙게도 양주시는 장욱진미술관과 석현천 물놀이쉼터, 야외조각공원, 그리고 새로 조성한 민복진미술관을 한 장의 티켓(성인 5000원, 청소년·어린이 1000원)으로 모두 입장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넓은 야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미술관으로 향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외양의 건물 입구에는 개관전 ‘민복진, 사랑의 시대’를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내걸렸다. 평소 동경했던 대가의 작품세계를 새로운 공간에서 한꺼번에 만나려니 마음이 설렌다.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 1층 전시실.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 1층 전시실.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 작품으로 승화 

‘사랑의 공간’으로 명명된 1층 전시장에서는 청동과 돌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민복진 자택의 정원 공간을 참조해 모자상을 중심으로 60년대부터 2000년대 작품까지, 모두 87점의 조각상을 전시했다”고 설명한다.

작품 하나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감정들이 동시에 전해오는 듯하다. 특히 하나이면서도 둘인 존재로 표현된 모자상은 각별한 불러일으킨다. 정겨워 보이지만 어딘가 애틋하기도 하고, 안온한 행복과 쓸쓸한 그리움이 조각작품을 감싼 빛과 그림자처럼 공존하는 듯도 하다.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된 모자상.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된 모자상. 

작가의 개인사를 살펴보니, 민복진은 친적집에 양자로 입양돼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인간 정서의 원초적 보금자리인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의 화두로 붙들고 살아왔을 작가의 인생을 생각하니,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조각상들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모여있는 작은 조각원형 60점도 아주 흥미롭다. 작가가 평생동안 만들어온 작품들을 만년에 하나하나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어처 원형으로 표현한 듯하다.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조각작품 원형.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조각작품 원형.

수장고 겸한 2층 전시공간 

높이 5m의 개방형 수장대가 시원하게 펼쳐진 2층의 주제는 ‘사랑의 시간’이다. 수장고이자 전시공간을 겸한 이곳에는 144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1층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벽면에 투사되는 영상을 통해 다채로운 족적을 남긴 민복진의 작품세계를 감상할수도 있다. 

전시장 한쪽 넓은 유리창에는 싱그러운 숲의 초록빛이 가득하고, 작은 라이브러리에선 조형미술과 관련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유리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 상쾌한 바람과 햇살을 잠시 즐길수도 있다.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 2층 전시실.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 2층 전시실.

구상-추상 모두 품은 독특한 작품세계

한국 현대조각 1세대의 대표작가인 민복진이 표현한 조각들은 대부분 모자(母子)상, 가족상 등 사랑의 관계로 묶여있는 대상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의 조각의 가장 큰 특징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사람 형상임에는 분명하지만, 전형적인 인체 조각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비정형적 추상조각에도 속하지 않는, 민복진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때문에 미술사가들은 그를 ‘근대조각과 현대조각을 잇는 가교’라고 평하기도 한다. 

자료집을 읽어보니 민복진은 60년대에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고, 70년대에는 프랑스 살롱전에서 수상을 하는 등 해외로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0대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첫 개인전을 열 정도로 예술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보여줬다고 한다. 

미술관 계단에서 만나는 민복진 작가의 모습. 
미술관 계단에서 만나는 민복진 작가의 모습. 

한편으로 민복진은 가장 대중적인 공공미술가로도 유명하다. 광화문사거리를 비롯해 도시와 빌딩숲 곳곳에 자리한 민복진의 조각작품들이 행인들에게 일상의 쉼표를 전하고 있다. 때문에 조각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작품 앞에서만큼은 어디서 본 듯 익숙하고 친근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길 건너 자리한 또 하나의 미술관

민복진미술관에 이어 길 건너 장욱진미술관도 들러보자. 앞서 말했듯 장욱진미술관은 쾌적한 계곡과 야외 조각공원, 그리고 아름다운 미술관 건물이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하는 나들이 명소다. 

석현천 계곡 너머 자리한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석현천 계곡 너머 자리한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미술관에서는 현재 ‘장욱진 에피소드Ⅱ’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미술관이 새롭게 수집한 장욱진 화가의 작품과 함께 그와 예술세계를 교감했던 동반자들의 흔적들도 만나볼 수 있는 참신한 전시다. 특히 집과 가족의 따스함을 즐겨 그렸던 장욱진의 작품 이미지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하우스 스토리’ 코너가 무척 흥미롭다.  

회화와 조각, 장르는 서로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테마로 삶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장욱진과 민복진, 두 작가의 예술세계가 행복한 하모니를 이루는 듯하다. 이처럼 멋진 문화 인프라와 콘텐츠를 품은 이웃 양주시가 은근히 부러워진다.

장욱진의 작품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작품 '하우스 스토리'. 
장욱진의 작품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작품 '하우스 스토리'. 

미술도 감상하고 물놀이도 즐기고

미술관 주변에는 캠핑장과 권율장군묘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고, 다양한 메뉴의 음식점과 카페가 이어진 장흥관광지 고갯길을 넘어가면 산정에서 호수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기산저수지와 마장저수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호젓한 산책과 감성 충전 문화 나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여름 물놀이와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맛집·카페 나들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하루여행 코스가 아닐 수 없다.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
주소 :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2
문의 : 031-8082-4255

수장고를 겸한 2층 전시실.
수장고를 겸한 2층 전시실.
야외조각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민복진 작가의 조각작품.
야외조각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민복진 작가의 조각작품.
민복진미술관 라이브러리.
민복진미술관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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