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아침부터 계속 비가 퍼붓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봅니다. 오늘은 산황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모여 시민문화제를 하는 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톡에 불이 났습니다. 비가 와도 진행하느냐, 사람들이 오겠느냐, 음향시설은 습기가 차면 곤란한데 괜찮겠느냐…. 사실 나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어제 전라도 내소사로 자원봉사를 가는 아내를 데려다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전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좀 걱정을 했습니다. 요즘따라 무릎이 자주 쑤시고 아프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사히 데려다 줄 수 있을까? 하지만 당일이 되자 무릎은 괜찮았고, 먼 길 안전을 위해 차량정비를 맡겼는데 차 상태도 괜찮았고, 가는 길 날씨도 괜찮았고, 도로 사정도 괜찮았고, 오고가며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녁 늦게 친한 선배형과 편안하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형님은 여전했고, 건강했고, 보기가 좋았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들었지만 나보다 훨씬 젊게 사시는 형님 같은 분을 볼 때마다 참 좋구나, 저런 분들과 나머지 생애를 살아갈 수 있어서 나는 참 행운이구나 생각합니다. 고양시로 이사 와 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준 많은 분들 덕분에 무사히 살 수 있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젊어서는 군사독재와 싸우고, 나이 들어서는 돈과 싸우고, 늙어서는 미끄럼과 싸워야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과연 내가 미끄러져 버렸네요. 식구들 깰까 봐 누워서 조심조심 몸을 만져봅니다. 다리를 만졌는데 괜찮습니다. 엉덩이, 허리, 어깨를 만졌는데 괜찮습니다. 왼손을 만졌는데 괜찮습니다. 그런데 미끄러지면서 먼저 바닥을 짚었던 오른손이 괜찮지 않습니다. 팔목을 돌리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만져봅니다. 통증은 오지만 부러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서, X레이를 찍었더니 부러진 데는 없습니다. 대신 손목과 손가락이 부어올라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절대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진단을 받고, 손목 보호대를 두르고, 처방전 약을 받아 나왔습니다. 밖에는 비가 억수로 퍼붓고…. 오늘이 바로 산황산을 지키는 시민문화제를 하는 날입니다. 몸상태는 안 좋지만 사회는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후가 지났는데도 비는 여전하고, 여기저기서 걱정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장소를 일산은혜교회로 변경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적어도 비를 맞아가며 행사를 진행하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실내로 장소가 옮겨졌지만 이 폭우를 뚫고 시민들이 참여를 할까 걱정됩니다. 행사 전에 리허설을 진행하기 위해 1시간 전에 행사장에 갔습니다. 나들목학교 어린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앉아있고, 젬베에 재미들린 젬재미팀, 포크듀오 헬로유기농, 이희연 가수, 노승영 번역가 겸 가수, 그리고 서울 홍대에서 유명한 밴드죠도 와서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관록이 있는 교회라 그런지 음향상태는 좋았습니다. 무산될 거라 걱정했는데 문화제를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참여하신 분들은 모두 열정과 성의를 다해 맡은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주셨습니다. 고양시청 앞에서 벌써 4년 가까이 텐트를 치고 밤샘 농성을 했던 산황산 지킴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무사히 산황산이 지켜져서 고양시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운 나날을 소망합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비는 오지만 오늘 저녁 함께 모여 웃고 노래부르고 즐겁게 박수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23일 일산은혜교회에서 산황산을 살리기 위한 목요기도회 및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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