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지난주에 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백여 평에 달하는 밭에서 마늘과 양파를 수확했다. 자유농장의 마늘‧양파 공동체는 십 년 전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함께 모여서 막걸리를 마셔가며 땀을 흘리고 하지에 마늘과 양파를 수확해서 공평하게 나누는 게 운영원칙이다.
백여 평 밭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일곱 명이 나누면 그 양이 상당해서 트렁크에 실으면 차가 묵직해진다. 그렇게 집으로 가져간 마늘과 양파는 망에 담아서 베란다에 줄줄이 걸어두고 겨울까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마늘은 그렇다 치더라도 양파를 벽에 걸어두고 이듬해 봄이 오기 전까지 꺼내 먹는다고 하면 대체로 믿지를 못하는데 전통농법으로 키운 양파는 돌처럼 단단해서 상하는 법을 모른다. 맛 또한 시장에서 사다 먹는 것과는 너무 달라서 마늘과 양파 농사에 한 번 맛을 들이면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는 날이면 절로 신바람이 나서 고기를 굽고 왁자한 술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올해에는 마늘과 양파를 거둘 때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마늘과 양파는 시월에 심어서 이듬해 하지에 수확하기까지 꼬박 팔 개월이 걸리는데 그 팔 개월 동안 농사짓는 이들은 온갖 공을 다 들인다. 그래서 풍작이냐 흉작이냐에 따라서 수확하는 날 분위기가 극적으로 달라지는데 올해에는 예년과 비교해서 수확량이 삼분의 일로 급감했으니 그야말로 에고,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도 스프링클러를 두어 차례 돌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수확량은 더 형편없었을 것이다.
마늘과 양파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모든 농사가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원래 이맘때가 되면 열매채소가 줄줄이 쏟아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모든 작물들이 성장을 멈추기라도 한 양 자라지를 못한 채 이상기후를 견디고 있다. 일제히 싹을 틔워서 쑥쑥 자라야 할 울금과 생강은 이제야 찔끔찔끔 싹을 내밀고, 고추와 가지와 토마토를 비롯해서 오이, 호박, 참외, 수박 같은 넝쿨작물들도 겨우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감자는 하지가 다가오면 모든 잎들이 누렇게 쇠면서 줄기들이 일제히 쓰러지는데 올해에는 싹이 늦게 올라오는 바람에 아직도 잎과 줄기가 청년처럼 싱싱해서 수확을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지독한 봄 가뭄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끼쳤던 건 해질 무렵만 되면 오싹할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추위였다. 이제껏 농사를 지어오면서 나는 어린이날 이후에 작물이 냉해를 입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에는 오월 하순이 지났는데도 다음 날 농장에 나가보면 작물들이 마치 서리라도 맞은 것처럼 냉해를 입은 흔적이 역력했고, 일부 모종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는 바람에 몇 차례에 걸쳐서 새로 모종을 사다가 보식하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올해 농사가 어떠할지 종잡을 수가 없고, 장마가 끝난 이후에 수확이 어떻게 나올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년을 생각하면 내심 두려움이 앞선다. 향후 몇 년은 그럭저럭 이상기후를 견디기야 하겠지만 만에 하나 우리들이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는 식량대란이 떡하니 코앞으로 다가온다면 과연 그에 대처하는 일이 가능할까.
부디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벌어지기 않기를 간절히 빌면서도 마음은 무겁기 짝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