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월 29일부터 이틀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였다. 나토는 유럽 지역의 군사 기구인데 그 회의에 왜 윤 대통령은 갔던 것일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난, 국회 개원 협상 등 대통령의 리더십이 절실한 국내 문제를 제쳐두고 유럽의 군사기구 회의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나토 동맹 30개국 및 파트너국과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갔다고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반러·반중 연대를 천명한 나토 확대정상회의

나토는 이번 회의에서 2010년 이후 12년 만에 새로운 ‘2022 전략개념’을 채택해 러시아를 “가장 크고 직접적인 위협”, 중국을 “명시적 야망과 강압적 정책으로 나토의 이익·안보·가치에 도전”하는 나라로 규정했다. 이전 전략 개념에서는 러시아가 파트너 국가로 표현되었고, 중국은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다. 중국은 예상대로 강하게 반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나토는 냉전의 산물로 미국 주도의 세계 최대 군사동맹”이라며 “나토는 북대서양의 군사기구인데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으로 넘어와 위세를 떨치며 유럽의 집단 대결구도를 아시아-태평양에서 재현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겨냥해 “아태 지역 국가와 국민은 군사집단을 끌어들여 분열을 부추기는 어떤 언행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는 미소 냉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던 1949년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군사동맹 기구이다. 나토는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다. 소련의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동서독이 한 민족으로서 통일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통일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 되어 소련에 적대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통일 독일의 나토 가입 문제가 동서독 통일의 최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이 문제는 동·서독·미국·소련·프랑스·영국 등의 외무장관들이 2+4 회담을 통해 나토가 소련에 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서독이 소련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를 자극하였다. 올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 원인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서방 열강이 동맹을 이용해 러시아를 위협한다며 동유럽에서 군사 활동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에 대한 미국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번에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기존 회원국 외에 아태 지역의 일본·호주·뉴질랜드·한국 정상까지 초청해 개최되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번 회의의 목표가 “유럽과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을 통합 연결하는 것”으로서 미국 주도의 ‘대서양-태평양 동맹 네트워크 구축’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 5월 말 러시아는 ‘명백하고도 현재적인 위협’이고, 중국은 ‘국제 질서에 가장 심각한 장기적인 위협’이라며 이번 확대 정상회의의 목표를 반러 · 반중 연대의 강화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나토 회의는 미국 주도로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을 모아 반러·반중 네트워크를 만드는 중요한 외교무대였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패권 경쟁에서 한국의 스탠스

윤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 신냉전으로 가는 이 자리에 무슨 생각으로 참석한 걸까? 나토 정상회의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와 평화는 국제사회의 연대에 의해서만 보장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힘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국제정치세계에서 가치에 기반한 연대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준다고 정말 믿는 것일까?

가치 외교의 허망함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이분법을 기반 삼아 러시아를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성공적이지 않다. 우선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국들이 러시아의 완전 고립에 회의적이고, 헝가리·터키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사우디 등도 이런 접근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인도·멕시코·브라질·남아공 등 유럽 밖의 주요국들도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 선거를 의식해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중국산 소비품 관세 인하를 추진하였다.   

국익에 바탕해 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국제정치세계에서 이념에 바탕한 국제적 연대로 자국의 안보를 도모하겠다는 건 어리석다. 미국과의 한미 동맹을 발전시키는 것은 필요하지만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연대를 주창하며 미국-중·러 간 패권싸움의 선봉에 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미국 중심의 대서양-태평양 동맹 네트워크 강화는 중국·러시아·북한의 결속으로 이어져 동북아에는 신냉전 구도가 등장한다. 여기에 일본과의 군사협력까지 추진된다면 한반도는 미·일·한 대 중·러·북 군사 대치의 전장이 된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윤 대통령은 더 이상 관념 놀이로 국가와 민족을 위태로운 처지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본인이 누차 천명했던 국익과 실용에 입각한 국정 운영으로 돌아가야 한다. 러시아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들은 철퇴를 맞아 사업을 접었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도 제2의 사드 사태를 우려하며 가슴조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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