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 소장, 정치학 박사
[고양신문]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가끔 깨닫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피차 토론하며 모순을 해결하는 운명을 가진다. 토론이 없으면,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노출을 하고, 본 것 중에서도 자신이 인식한 틀에 맞는 정보는 수용하고, 맞지 않는 정보를 배척하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더욱이 인간은 연줄망을 통해 유유상종을 일상화한다. 비슷한 정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자기 생각을 확신한다. 선택적 노출, 확증편향, 번데기 고치 같은 필터버블(filter bubble)과 유유상종을 벗어나는 길은 피차 토론과 비판의 자리일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피차 토론과 비판 위에 세워진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토론하고, 정당들이 대안을 가지고 정책경쟁하고 상호비판할 때, 유권자는 그들의 입장, 논리, 대안을 평가한 후 선택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이 벌이는 경쟁적 정치체제라 정의한다.
민주주의 정책경쟁의 중요한 특징은 ‘경쟁을 제도화’이다. 민주주의에서 경쟁은 시작과 종료에 대한 규칙이 정해져 있다. 의제를 제안하거나 안건을 제출하고, 질의하고 답하며, 토론하고, 토론을 종결한 후 다수결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는 절차로서 평화적인 경쟁의 제도화이다. 총과 칼로 상대를 상처 내는 혈기의 경쟁이 아니다. 규칙과 절차에 따라 경쟁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평화적인 제도화가 민주주의 정치이다.
토론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 즉 내가 진리를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고, 나머지는 모른다는 생각, 따라서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는 하는 질문법, 그리고 질문법을 통해 진리를 얻고자 하는 ‘진리에 대한 사랑’이 필로소피(philosophy), 철학이라 배웠다.
근대 학자들도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사소통의 합리성과 공론장을 말한 하버머스(Jurgen Habermas)가 있다.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서로의 모순을 찾아내고, 타당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통해 인간은 근대 사회를 만들고, 민주주의 정치를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공론장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비판의 수용이다. 서로의 의견에 대하여 모순을 비판하는 것인데, 나를 포함하여 한국 사람들은 비판을 받으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서 감정은 내려놓고, 상대방이 비판하는 이유와 상대방의 갈망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지만, 인류는 비판을 통해 문제들을 해결해 왔기 때문에 비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공론장의 조건이다.
둘째는 토론의 포괄성이다. 공론장은 여론 형성을 보장하고, 모든 구성원이 빠짐없이 참여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지위의 고하가 없어야 한다. 공론장에서는 상하관계를 없애고 수평적 관계가 원칙이다. 관례나 정설과 같은 특정 의견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정 의견이 권위를 가지면, 새로운 의견과 생각을 제안하기 어렵다.
의회는 시민의 대표와 정당이 정책경쟁을 하는 공론장이다. 영국의 역사에서 국왕이 의회를 소집하여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결정하려 했지만, 의회에 모인 귀족 대표와 평민 대표, 그리고 신부 대표는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불합리한 왕의 정책을 개선했으며, 인치를 법치로 만들고, 부당한 인식 구속을 재판에 의한 적법한 처리 절차로 만들었다. 타당한 수입과 지출의 근거에 의지하여 세금을 거두게 한 일도 의회라는 공론장을 통해서이다. 영국의 의회를 의미하는 팔리어먼트(parliament)는 말하다라는 어원을 가진 팔러(parler)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말하는 공간이 의회이고, 비판하고 토론하면서 타당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공간이 의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고양시의회의 의장은 공론장의 사회자이며, 토론과 비판의 촉진자이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실현하여, 무엇이 모순이고, 모순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공론장의 리더이다. 고양시의회가 17명의 더불어민주당 시의원과 17명의 국민의힘 시의원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정치 양극화가 심해져 교착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부정적인 구조이지만, 동시에 타협과 절제의 미학, 그리고 비판과 토론을 통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보여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 구조이기도 하다.
인류의 정치적 유산이자 보물로서 ‘의회’라는 정책경쟁의 공론장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남은 일은 정치 지도자들과 정당의 역할일 것이다. 고양시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이 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의회라는 공론장에 안건으로 상정하기를 소망하다. 고양시의원과 두 정당이 안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질문하고 토론하고 비판하는 정책경쟁을 보여주길 소망한다. 의장과 상임위원장, 34명의 고양시의원 모두가 고양시 의회를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실현하는 정책경쟁의 공론장으로 만들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