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요즘 MBTI 등의 성격 검사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의 성격이 16가지밖에 안 되진 않겠지만 간략하게 특징을 잡아 분류한 MBTI는 쉽고도 흥미를 끌 만하다. 성격은 타고남과 자라온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이니 부모와 형제자매 간의 관계를 알면 더 쉽게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저마다 생존의 과정에서 자신이 택한 방법을 따른다. 특히 출생순서에 따라 나뉘는 생존방식의 차이는 성격 형성에 절대적이라 하겠다. 태어나보니 덩치가 산 만한 형과 언니들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 눈치의 달인이 되기 쉽다. 그래서 조직 생활에서 능수능란한 막내들은 거만함 대신 환하게 웃으며 살아남으려 애쓴다. 도움받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며 밥 얻어먹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귀여움과 애교로 생존할 수 있는 이들이다. 부모의 억압은 없고 관용을 경험한 그들은 포용적인 성격이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많으면 막내는 제외되기 일쑤여서 자칫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 가족 간 회의를 해야 할 때 막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된다. 가족회의 때 막내가 듣는 말은 초반에는 “너는 가서 커피 타 와”이고 후반부에는 “우리 다 결정했다. 50씩 내기로 했는데 너는 10만원만 내라”이다. 막내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일을 겪으며 입을 꾹 닫는 성격이 되곤 한다. 어차피 내 의견엔 관심 없잖아 식으로 말이다. 자신을 숨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들에게 속마음을 듣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미숙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점도 그들의 아킬레스건이다.  

맏이로 자란 사람은 어떨까.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모범생으로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진 첫째는 어릴 때부터 꼬장꼬장한 애어른이다. 동생의 행실은 못마땅해 맞아도 싼 놈이라고 여긴다. 부모가 부여한 책임감에 맏이는 늘 리더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어디에 가나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짐을 기꺼이 짊어지지만 힘들어하고 또한 죄책감에 짓눌려 산다. 얻어 먹는 것은 불편해하고 자신의 지갑이 얇더라도 허세를 부린다. 남편이 이런 사람이어서 속 썩는다는 아내들을 종종 본다. 
  
둘째는 또 어떤가. 태어나보니 이미 내 앞에 잘난 놈이 있다. 둘째는 완벽하려고 애쓴다. 첫째의 허점을 파악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자신보다 우월한 첫째를 이길 수 없으니 열등의식이 있다. 첫째는 관심을 빼앗겼다고 툭하면 자신을 응징하니 세상이란 거친 것이라고 학습한다. 그러다가 밑에 동생까지 태어나 관심을 빼앗기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곤 한다. 
  
셋째는 겁이 많다. 우월한 존재가 둘이나 있으니 짓눌릴 수밖에 없다. 내 감정을 느끼기보다 앞의 존재들을 모방하기 바쁘다. 상대가 기뻐야 기쁜 이들이다.
  
외동인 사람은 어떨까. 외동이 아니어도 외동 성격이 될 수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이들은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10년 계획도 세워 놓았을 이들이다. 이것이 흐트러지는 것은 참기 힘든 스트레스이다. 내가 세운 견고한 성을 다른 이가 부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방해받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이들은 외로우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분명히 외로워서 힘든데 혼자 있으면 편하니 말이다. 독립적이며 자발적인 성격이어서 의존하려는 이들을 이해 못 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기 때문에 효도를 미룰 대상도 없고 책임감이 확실하다. 단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 혹은 딸 하나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결핍된 존재라는 생각이 있는 편이다. 
  
성격은 특성상 여러 가지가 혼재하는 법이다. 혈액형처럼 달랑 4가지로 나뉠 수가 없으며 16가지로 나눈다는 것도 편리를 위해서일 뿐이다. 내 성격을 잘 파악했다고 느낀다면 약점이라고 느낀 자신의 단면에 관용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하고 상대의 다름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실제의 ‘나’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쉽게 폄하해선 안된다. 나와 너무나 다른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같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라고 쉽게 폄하하지 말자. 언젠가는 그 가시울타리가 자신을 찌르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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