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농사짓는 일이 곱절 힘들어졌다. 불화살처럼 따갑게 내려쬐는 햇살에 수확물도 점점 많아져서 한 차례 수확을 끝내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가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이맘때 가장 힘든 일은 예초기를 돌리는 일이다. 

장맛비가 그치면 풀은 무서울 정도로 빨리 자란다. 그래서 이때 게으름을 피우면 허리 높이까지 자란 작물들은 순식간에 풀숲에 파묻히고 만다. 개인 회원들 밭이야 각자 알아서 김매기를 하기 때문에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지만 농장 주변 풀 정리는 온전히 내 몫으로 남는다. 그러면 나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해가 뉘엿뉘엿할 때 예초기를 등에 맨다. 그러나 전신을 가리다시피하는 예초기 전용 앞치마를 두르고 예초기를 돌리면 이건 한증막에 들어선 거나 매한가지다. 그렇게 두세 시간 예초기를 돌리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예초기 진동에 시달린 두 팔은 삼십 분은 좋이 저릿저릿 떨린다. 

찬물에 후다닥 머리를 감고 큼직한 머그컵에 얼음물을 담아 느티나무 밑에 앉으면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고 훤해진 농장이 눈에 담기는데 이럴 땐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모두의 힘으로 잘 가꿔진 농장정경.
모두의 힘으로 잘 가꿔진 농장정경.
마늘과 양파 수확 후 울금과 오이가 자라고 있다.
마늘과 양파 수확 후 울금과 오이가 자라고 있다.

말 나온 김에 사족을 덧붙이자면 농사일은 정말 고된 중노동이다. 그러나 농사짓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힘든 일은 널리고 널렸다. 

운전을 하다보면 잘 달궈진 도로 위에서 예초기를 돌리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내가 종일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진저리가 쳐지면서 고개가 절레절레 내저어진다. 밭에서 일을 하다보면 건설노동자들의 삶도 자꾸만 되돌아봐진다. 요즘 농장 인근에 있는 원당시장 일대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인데 그곳에서는 수천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매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농사야 내가 쉬고 싶을 때 그냥 느티나무 그늘 밑에 드러누우면 그만이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그럴 자유가 없다. 무엇보다 그곳은 농장보다 훨씬 뜨겁다. 한 여름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거나 도색을 입히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층빌딩 외벽에 매달려 일하는 분들과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어부들과 조선소 용접공들의 삶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조아려진다. 

그분들을 떠올릴 때 더욱 마음이 아픈 건 열악한 노동조건도 조건이지만 그분들의 삶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과 태도가 온당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여름이 깊어감을 알려주고 있는 해바라기와 조롱박.
여름이 깊어감을 알려주고 있는 해바라기와 조롱박.

나는 해마다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자격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에 이따금 출점을 하곤 하는데 처음 대학로에서 열린 장터에 참가했을 때 받은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마르쉐 장터를 운영하는 운영진들은 장터에 참가한 모든 농부들에게 농부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한마디가 내가 대단히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개인적인 감정일지 모르겠지만 내게 농부님이라는 호칭은 그 어떤 호칭보다 훨씬 황홀하고 달콤하게 들렸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우리나라에서 ‘님’자를 붙이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그 직업의 가치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보다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선박에 매달려 용접을 하는 분들과 건설현장에서 폭염과 맞서는 분들과 공장이나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과 농부와 어부와 수많은 장삼이사들의 노동이 없다면 그건 태양을 잃는 일과 똑같기 때문이다.

 

두 번의 김매기를 끝낸 울금밭.
두 번의 김매기를 끝낸 울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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