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정보라 『여자들의 왕』

[고양신문] 옛날 옛날에 한 왕국에 공주님이 살았다. 공주님은 마법에 걸려 잠이 든 상태로 높은 탑에 갇혀 있었다. 공주를 구하려면 불을 내뿜는 용을 물리쳐야 했는데, 결국 용감한 기사가 공주를 구해 내고 둘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란다. 

옛날 옛날에 눈처럼 얼굴이 희고 머리카락이 새카만 공주가 살았다. 왕비의 모함을 피해 숲속의 일곱 난쟁이들과 살게 된 공주.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 보지만 결국 왕비가 준 독 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공주를 유리관에 보관해 두기로 한 난쟁이들. 이런 공주의 모습에 반해 입맞춤을 한 이웃나라의 왕자. 결국 공주의 목에서 독 사과 조각이 튀어나오고 공주와 왕자는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란다.

공주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대부분 이렇게 흘러간다. 얼굴은 너무나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지만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늘 왕자나 기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 자신의 인생을 그에게 내맡긴다. 새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은 공주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인데, 인생의 목적 설정도 자신의 몫이 아니다. 

결혼 승낙을 받아 오겠으니 자명고를 찢으라는 호동 왕자의 편지를 받은 낙랑 공주. 만약 공주가 그에 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보다 나라를 선택했다면? 처음부터 낙랑 공주한테 선택의 칼날이 주어진 일이기나 했을까? 어떤 식으로든 통일만 된다면 혼인으로 맺어졌을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였다. 실상은 자명고가 아니라 사실상 국력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정보라 소설집 『여자들의 왕』
정보라 소설집 『여자들의 왕』

정보라 작가가 『여자들의 왕』이라는 소설집에서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야기 속에서 여자들이 진짜 주인공이 된다면?’ 단편 「저주 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 그의 신간 소설집은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읽어 온 이야기를 한껏 비틀고 있다. ‘여자는 좀 강하면 안 돼?’라든가, ‘여자가 칼을 들고 좀 싸우면 안 돼?’라든가, ‘여자는 왕위 찬탈을 위해 피 좀 보면 안 되나?’ 등의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당연히 되지, 왜 안 되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뒤집은 이야기 속에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서사의 중심에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이상 여성은 남성의 키스 따위를 기다리면서 얌전히 드러누워 있지 않다는 것. 이제 그런 옛날이야기는 애들도 안 읽는다. 

아직도 드라마에서는 강한 기사형 남성이 여성의 손목을 붙들어 낚아채며 사랑을 고백하고, 남성이 갑자기 벽치기로 여성을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신의 사랑을 왜 받아 주지 않느냐고 소리치는 남성을 순정남이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여성에게 그런 식으로 마음을 고백하면 폭력이나 다름없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 속 공주처럼 “이게 어디서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그래?”라는 말과 함께 칼을 겨누거나 주먹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치기처럼 그대로 사랑을 고백받고 결혼으로 끌려갈 테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다행히 요즘 여성들은 옛날이야기의 공주와는 좀 다른 듯하다.

김민애 기획편집자
김민애 기획편집자

생각보다 현실에서의 남성과 여성은 좀 더 섬세하다. 옛날이야기 주인공들처럼 막무가내식이 아니다. 그런데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기사형 남성과 공주형 여성의 클리셰가 반복되어 나타날까. 왜 미디어는 그걸 우리에게 반복해서 노출시킬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기에.

세상이 달라졌다는 건 우리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에 맞게 옛날이야기도 우리 생각에 맞게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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