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유체이탈 화법으로 유명한 정치인이 계셨다. 사람들은 그의 뜬금없는 말에 많이 어이없어했다. 국정에서 책임져야 하는 심각한 사안이 생겨도 “참 안타깝다”는 말 한 마디로 비껴갔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유체이탈을 생활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어떤 문제와 관련하여 “안타깝다”라는 감정 표현도 많이 하고, 문제의 원인과 양상에 대한 열띤 토론도 하며 뭔가 의식 있고 진보적인 모양새는 갖추는데 막상 내가 해야 할 변화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혹은 그렇게 변해야 하는 과정이 불편해서 그런지 그냥 피한다. 특히 변하려면 지금 당장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환경문제와 관련해 더 그렇다.

최근 폭우 피해로 인해 반지하 거주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너무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피해 관련 이야기는 요란한데, 이러한 기록적 폭우가 기후변화ㆍ지구온난화의 결과라는 현상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물론 아주 그런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태학적 차원에서, 친환경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여러 대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마치 지구가 세 개 정도 있는 것처럼 마구 에너지를 소비하고 반환경적 생활이 구조화된 우리의 일상에 대한 성찰적 반성은 보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를 찾아올 기록적 폭우에 대비하여 빗물터널을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은 나무도 심어야 한다. 정책적 차원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다. 반지하를 더 이상 주거공간으로 허가하지 않기로 한 서울시 결정도 옳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기록적 폭우나 폭염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부터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없고 변화도 없다. 전문가들의 제안과 정치인들의 현란한 제스처가 요란하다. 한 쪽에서는 차를 잃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집, 심지어 목숨을 잃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당장 내 생활이 편한 게 우선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편해지는 상황은 싫다.

지속가능성은 갖고 있는 것 이상을 소비하지 않음에서 출발한다. 현재 존재하는 a의 양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a의 양으로 유지하거나 재생하여 평형 상태를 유지할 때 지속가능하다. 저수지 물을 채워지는 양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언젠가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낸다. 지속가능성을 상실한 더 이상 저수지가 아니라 그저 맨땅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한 방울의 땀이라도 흘릴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에어컨을 켜댄다. 목감기가 걸릴지언정 일단 더워서는 안된다. 버스나 지하철, 공공장소에서는 추워서 긴팔옷을 입어야 할 수준의 냉방을 유지하지 않으면 불평불만의 목소리가 당장 터져 나온다. 추우면 따뜻해야 하고 더우면 시원해야 하기 때문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내 몸 편하자고 하는 엔진공회전은 이미 K-교통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민스포츠다. 살인적인 기름값도 엔진공회전을 하는 우리의 손가락을 막지는 못한다. 상품의 과대포장은 ‘보다 안전하고 깨끗하며 보기에 좋은 물건’을 소비하려는 탐욕의 결과다. 지구가 가진 환경 자원 a의 양보다 더 많은 a+를 ‘편하게 살기 위하여’ 소비하고 있다. 기후악당 한국의 모습이다.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지만 공기가 있는 삶이 당연하듯이, 현재 편한 삶을 위해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생활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움이 되었다. 편한 삶을 욕망하면서도 그러한 삶이 주는 결과에 대해서는 가끔 “참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내야 마음이 좀 편해진다. 그래서 텀블러 사용이나 재활용 기반 상품 유통을 일상이 아닌 행사도 한다. 행사에 모인 활동가, 정치인, 전문가들이 모여 “참 안타깝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우리는 거기에 동조하며 위로받는다. 그리고 다시 편하고 시원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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