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신문] 한반도에 군사·경제 위기가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다. 미중 간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개되는 급격한 공급망 재편 등 세계적 격동 속에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친미·반중·반북의 이념적 편향이 겹쳐지며 초래된 위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강화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응해 북한이 날선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7일 전승절 연설에서 “남조선의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윤석열이 집권 전과 후 여러 계기들에 내뱉은 망언과 추태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비난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평양 노동신문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평양 노동신문

그 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가세해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는 담화로 윤 대통령에게 험담을 퍼부었다. 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은 정말 천진스럽다.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자체가 싫다”며 윤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했다. 김여정 담화는 노동신문에 실렸는데, 노동신문은 대외용인 조선중앙통신과 달리 북한 주민들이 보는 매체로서 공식성을 지닌 매체이다. 

북한의 국방력 강화와 핵전략 변화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건설과 국방력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정상회담 직후에 열렸던 노동당 중앙위 제7기 4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며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에서 정면 돌파전을 선언했다. 2021년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는 대외 전략을 보다 구체화시켜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는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으로 대할 것이고, 남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지하며 북남선언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해나가야 한다”며, 남한의 태도에 따라 “대가는 지불한 것만큼 노력한 것만큼 받게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 6월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 제8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더욱 강경해졌다. 대미·대남 관계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 원칙을 천명하며, 국방력 강화를 위한 목표 점령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기존의 대미정책과 대남정책 구분을 없애고, 둘 다 ‘대적 투쟁’의 관계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보조를 맞춰 대북 적대정책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 전략도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2021년 초 열렸던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핵 선제 및 보복타격능력 고도화’가 목표로 제시된 이후, 올 4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 핵전투무력이 동원된다”며 개전 초기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선제적 핵사용 전략’을 언급했다. 그 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이를 재확인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5일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고 밝혔다. [사진=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5일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고 밝혔다. [사진=대통령실]

김정은은 인민군 창건 90주년 기념 연설에서 “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행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근본 이익’이 침해되면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선 자위적 조치로서 ‘핵 선제 불(不)사용 원칙’을 일관되게 공언해온 점에 비춰 중대한 변화이다. 

국익과 실용

남북은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 경쟁적으로 ‘힘을 통한 평화’, ‘강대강’의 공세에 나서 대립 강도를 점차 높이고 있다. 남한은 미국과 함께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실기동 훈련으로 실전처럼 치르고 있고, 북한은 ‘선제 핵전략’을 위한 전술핵 운용체계와 작전 편제까지 완료한 상태다. 우려스러운 것은 남북의 최고지도자 사이 상대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할 만큼 신뢰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최고위 수준에서 위기관리가 안 되는 현재의 한반도는 ‘위기 뒤 대화’가 아니라 ‘위기 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소규모 충돌이 핵무기 사용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세계를 주도하는 G2인 미·중이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을 경쟁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일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3불1한’ 외에 ‘자주독립·선린우호·개방상생·평등존중·다자주의’ 등 5가지 요구를 추가했다. 주권국가 사이 외교에서 상대에게 “자주독립을 견지해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한 것은 매우 무례한 처사이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 주도의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와 칩4(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에 가담하는 등 친미 일변도의 정책으로 중국 봉쇄에 참여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일 것이다. 미국 또한 한국을 중국 견제의 선봉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차를 북미에서 조립하지 않았단 이유로 배제시켰다. 향후 현대차의 아이오닉 등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 미국 수출에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군사·경제 위기가 이렇게 빨리 몰려온 건 어설픈 이념 위주의 편협한 사고와 정책 때문이다. 세계 각국들이 미중 간 패권경쟁과 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속히 진행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생존을 위해 각개도생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국익과 실용으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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