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마지막 인터뷰-유재덕 신도제일교회 원로목사

[고양신문] 유재덕 목사님은 1983년 고양시 효자동 신도제일교회 목사로 부임해 이후 40년을 한결같이 지역사회와 함께해왔습니다. 고양시 시민운동을 태동시키고, 시민사회의 물꼬를 트고, 시민운동 현장을 지켰습니다. 고양시민의 삶 곁에서 늘 함께했던 유재덕 목사님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고양시 평생교육과의 ‘2022 민주시민교육’ 일환으로 진행돼, 이달 초 평생교육과 웹진 ‘사부작사부작’에 실렸습니다. 인터뷰는 나경호 마을활동가와 이인영 고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이 진행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들려주세요.
저는 39년생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에 들어갔을 때, 그 해 8월에 나라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방되기 전까지 학교에서 일본식 교육을 1년 배웠습니다. 2차대전 때라 당시 학교선생님들은 빳빳이 날이 서있는 군인 모자를 쓰고 허리춤에는 칼을 찼으며 정강이에는 각반을 차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학교 가는 등굣길에는 아이들이 하나둘 기다렸다가 모여서 선생님의 인솔 하에 군가를 씩씩하게 부르면서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해방되고 나니 그때부터 선생님들이 우리나라 동요를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배운 동요가 참으로 재밌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좋은 내용이 많았어요. 나라의 독립, 해방의 감격을 자연에 비유하여 이야기했던 동요들이었습니다. 이게 시작이 어찌 되냐면 “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나는 나는 우리 고향 제일 좋아요~ 오늘부터 이 동산 내가 맡았죠. 물을 주고 꽃을 기르는~”(잠시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우리가 꽃에다가 물을 주고 가꾸는 것처럼 해방된 이 땅을 우리가 잘 보살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마냥 즐겁게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떤 노래를 부르면 선생님이 막 쫓아와서 그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고 엄하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때는 몰랐죠. 지금에서 보니 그 작곡가들이 당시 월북을 해버려서, 그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를 못 부르게 했던 것 같아요. 

저의 어렸을 때는 모든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불렀던 노래들, 그때 함께 일하거나 공부했던 친구들은 저에게는 마냥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세상은 어렵고 혼란스러웠는데,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나는 세상은 모든 게 즐겁고 기뻤어요. 

어이쿠,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죠. 그래도 이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네요. 제가 6학년이 되면서 6·25가 발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생각해봐도 참 철이 없었어요. 그 당시는 형제들이 너무 많아서 부모가 키운 게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크는 시절이었고 우리 가족만 해도 벌써 9남매였습니다. 그런데 6·25 때 형제 둘을 잃고 결국 7남매만 살아남았어요. 당시 나는 전쟁의 심각성이나 위험함을 모른 채, 피난 갈 때 가족과 형제들이 주욱 일렬로 손을 잡고 가니깐 그게 마냥 신나고 좋았습니다. 오늘날 소풍을 가는 것처럼요. 가족들과 개울가에서 나무 때서 밥 해 먹고 산자락에 들어가서 서로 체온을 맞대면서 잠을 청하고 하였죠. 
세상의 끔찍함과 또 잔인함이 넘실대는 세상이었는데 그 당시 어린 저에게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처럼 느껴졌어요. 어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 비참한 전쟁 통에서도 저에게는 분명 찬란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만, 전쟁은 어떠한 명분이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고양시에 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83년 고양시가 아니라 고양군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교회일도 많이 했지만 주로 지역사회 일을 많이 해왔어요. 시민운동으로 고양민주군민회(지금의 고양시민회)를 시작하면서 초대회장이 되었고 환경운동연합, 고양YMCA, 고양신문 창립멤버이거나 초대회장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월드비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여러 국제구호단체와 달리 월드비전은 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6·25 때 고아들을 모아서 미국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당시 대한민국의 어려움을 호소하여 여러 나라에서 구호물품을 얻어오고 했었는데 이제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구호단체가 되었죠. 이처럼 예전부터 시작한 일들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초년목회 때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어려웠는데 특히 당시 모든 교회 사정들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도 당시 아버님이 ‘경제적인 건 걱정하지 말고 재밌게 하라’ 말씀을 주셨어요. 덕분에 목회를 1년 반 동안 정말 재밌게 했죠. 당시 지역(호산나학교, 대전시 등)에서 우리 교회(유성 학하교회)를 많이 지원도 해줬고요. 아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당시 저는 아버님 말씀대로 ‘즐겁게 잘 살아야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오래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거기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내 이웃들과 교인들도 함께 즐거워야 다 같이 주인이 될 수 있겠죠.

 스스로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부끄럽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가 아니라 좋은 이웃이 있고 좋은 동네선후배가 있고 훌륭하고 반듯하게 자란 자녀가 있고 좋은 교인들, 좋은 사람들이 제 주변에는 많이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사람들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니 저는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나요. 
많죠. 방금 말한 것처럼 좋은 친구들, 좋은 이웃들이 많아요. 저는 한번 관계를 맺으면 살갑게 대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난 지금은 저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친구들, 나와 같이 마을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함께 일한 동료들, 최근에 알게 된 게이트볼 노인정 친구들까지. 저에게는 한번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구이자 이웃입니다. 저는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가는 편입니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노하우가 있냐고요? 참고로 저는 노하우나 요령 이런 단어를 무척 싫어합니다. 특히 관계에서는요. 삶은 노하우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살면서 생활로 얻는 거예요.

▍나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뭔가요.
나이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건강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제 또래는 다 비슷할까요? 목회를 오래 하다 보니 저는 신이 인간에게 이미 안전장치를 다 해놨다고 생각해요. 그 안전장치를 잘 유지하면서 순리대로 살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병원도 안 가고 약도 안 먹고 의사도 믿지 않고 화학약품 같은 양약도 신뢰하지 않아요. 하하하. 너무 좀 그런가요? 약이라는 게 한 부분에는 효력이 있겠지만 다른 부분에는 독약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또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매번 반복되잖아요. 나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안 받았는데 모르는 게 약이라 생각하며 삽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잘 살았어요. 그래서 그래요. 이제는 병이 들고 아프면 신의 부름에 거절하지 않을 거란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자정에 죽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후회할 것 같나요.
저같은 목회자는 목회를 시작할 때 여러 가지를 중요하게 배우는데 특히 감리교는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의 3가지 준비에 대해 배웁니다. ‘첫째는 언제 어디서나 설교할 준비를 해라.’ 둘째는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나 이사 갈 준비를 해라.’ 마지막은 ‘언제든 하나님이 부르면 후회 없이 죽을 준비를 해라’입니다. 그냥 죽을 준비를 하거나 마음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그 순간 후회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자 동시에 늘 죽음을 생각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저는 세 번째 준비를 이리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 저는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일기를 종종 쓰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연초에 일기를 많이 씁니다. 하하. 당시 목회자들은 다 그랬겠지만. 그래도 제가 후회하는 게 있다면 목회를 하면서, 또 지역에서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하면서 한편으로 가족을 너무 등한시한 게 아닌가 그게 너무 미안합니다. 
 

▍자존감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날 어찌 볼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해요. 최근 내가 은퇴하고 나이가 많아지면서 늘 생각하는 게 이제 내가 여길 가도 되는 건가, 저 사람들이 날 불편해하지 않을까, 노인네가 주책이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웃음). 의식하지 말아야 하는데 거 참. 이제 나이가 돼서 돌아보니 얼마나 장수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삶의 질이 건강하냐가 바로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민주시민일까요.
다 같이 잘 사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다른 사람이 굶주리고 고통 받고 있는데 나만 좋은 건 절대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요새 우리나라는 ‘정치하는 사람들만 잘하면 정말 참 재밌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을 기업인들이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어땠을까부터, 정치인들이 먼저 편을 가르는 게 과연 민주시민으로 괜찮은 걸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하지?, 베푸는 건 있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정작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베푸는 건 왜지? 이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네요. 모든 게 이상해요. 부자감세 이런 건 정말 잘못된 거잖아요. 다 같이 잘 살려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민주시민 같아요. 저에게는.

▍본인은 민주시민인가요? 주변에 민주시민이 많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목사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리 경직된 이유에는 교회의 책임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갈등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들은 교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해결하려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더 촉진하거나 심화시키는 것 같아 늘 반성하게 됩니다. 제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듣고 공부한 바로는 빨갱이라는 단어는 기독교에서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 정치인들과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산당을 적대화하고 악마화해 국민들의 불만과 관심을 자꾸 외부로 돌렸는데 교회도 이런 부정적인 일들에 많이 가담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다 빨갱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빨갱이로 몰아 없애고. 아이들도 입에 붙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서로를 빨갱이라 불렀어요. 그 단어로 서로를 차별하고 상처를 입히며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질문이 뭐였죠? 아! 저보고 민주시민이냐 물었죠? 제 눈에는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부 다 민주시민인 것 같아요. 하하하. 이렇게 답변했다가 교회 분들하고 정치하시는 분들이 싫어하면 어쩌죠? 

▍사회적 약자들, 소수자들을 위해 주민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성경에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당장 장애와 질병, 각종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이웃들의 눈높이와 자리에 함께 서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인들이 잘해야 하고요. 하하하. 지역과 마을은 시민의 손을 많이 타야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먼저 사회의 좁은 곳에 몰려 있는 힘과 돈을 나눠야 한다 생각해요. 분배해야죠. 그게 다시 돌고 돌아 힘이 있는 자, 없는 자, 돈이 있는 자, 없는 자, 모두를 구할 거라 생각해요. 그 시작은 가장 먼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사람이, 쥐고 있는 사람이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있었나요? 민주주의는 이상이지요. 단지 우리는 그걸 향해 가려 노력하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전 세대가 단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는 개념이에요, 그렇게 어렵고 그렇게 노력해도 닿기가 쉽지 않은 말인데, 오늘날 정치인들이나 기득권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거나 말장난처럼 쓰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 사랑하는 자녀나 소중한 사람이 민주시민이 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말이나 조언은.
민주시민이 되고 싶다면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지내라. 너도 재밌고 친구도 재밌고 그래야 민주시민이 될 수 있어. 

나경호 마을활동가
이인영 고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교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갈등을 해결하려
고민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심화시키는 것 같아 
늘 반성하게 됩니다.

힘과 돈을 나눠야 힘이 있는 자, 없는 자, 
돈이 있는 자, 없는 자, 모두를 구할 거라 생각해요. 
 
정치인이나 기득권이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쓰거나 
말장난처럼 쓰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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