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농사를 짓다보면 계획적이든 즉흥적이든 생전 안 하던 일을 할 때가 있다. 

농사경험을 쌓아가면서 공부를 계속하다보면 아, 이런 방법을 써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번득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실천을 해보면 그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열매채소 밭에 이른 봄 열무나 시금치 씨앗을 파종했다가 고추나 오이 등속을 함께 키운다던가, 고추 사이사이에 들깨를 심어 벌레피해를 줄인 것도 그렇고 올해 틀밭을 만든 일도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진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퍼뜩 떠오른 생각을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 즉시 실행에 옮길 때도 있는데 올해 울금과 오이농사가 똑 그렇다. 

사월 초에 씨울금의 소요량을 어림짐작으로 구매하는 바람에 나는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씨울금을 주문한 탓에 자그마치 삼십만 원 가까이 되는 분량의 씨울금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를 어쩐다, 끌탕을 하다가 문득 낙엽이 두툼하게 덮여있는 마늘밭에 씨울금을 심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마늘이 잘 자라고 있는 밭에 씨울금을 묻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늘을 수확할 하지 무렵 울금은 일제히 싹을 내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원래 그곳이 울금밭이었던 양 울울창창 잘 자라고 있다.  

마늘밭에 심었던 울금들.
마늘밭에 심었던 울금들.
본 밭의 울금들. 마늘밭에서 자라고 있는 울금들과 별다른 세력차이가 없다.
본 밭의 울금들. 마늘밭에서 자라고 있는 울금들과 별다른 세력차이가 없다.

오이농사도 엉뚱하게 일을 벌였다가 크게 재미를 보았는데 원래는 수확에 목적을 두지 않고 수확을 끝낸 양파밭의 풀 관리나 해볼까 하는 요량으로 칠월 초에 오이모종 백 개를 사다가 듬성듬성 심은 게 발단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수확을 끝낸 양파밭은 팔월 말까지 비워두었다가 무와 총각무 씨앗을 파종해서 시월 중순에 거둬들인 뒤 양파모종을 심어야 한다. 그런데 무를 파종하기까지 두 달간 비워둔 양파밭은 그야말로 온갖 풀로 장관을 이루고 그걸 다시 밭으로 만들자면 현기증이 핑, 돌면서 곡소리가 절로 난다. 그게 싫어서 딴에는 빈 양파밭에 오이모종을 심어두면 짬짬이 김매기를 하게 될 테고 그러면 팔월 말 고생을 덜 수 있지 않을까 꾀를 낸 것인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이넝쿨은 천지사방 뻗어나가면서 꽃을 피우고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한 달 가까이 오이를 줍다시피 따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천 개 가까이 되었다. 

수확이 끝난 양파밭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오이텅쿨들.
수확이 끝난 양파밭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오이텅쿨들.
백여 개 남짓 수확해서 오이소박이를 담갔는데 지난 한 달간 이 정도 양의 오이소박이를 다섯 번이나 담갔다.
백여 개 남짓 수확해서 오이소박이를 담갔는데 지난 한 달간 이 정도 양의 오이소박이를 다섯 번이나 담갔다.

나는 의도치 않게 성공한 울금과 오이 농사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서 원주에서 우리와 똑같은 농법으로 삼천 평 농사를 짓는 선배에게 으스대는 마음으로 보여주었는데 선배는 자기도 자랑할 게 있다면서 삼백 평에 달하는 고추밭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고추밭 사이사이에 옥수수를 심어서 옥수수 대에 고추 줄을 띄운 풍경이 담겨있었는데 선배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발상보다도 고추밭에 그 어떤 병도 오지 않았다는 게 정말로 경이롭다며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진지하게 파헤쳐봐야겠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시도가 매번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게 농사가 됐든 삶이 됐든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후처럼 급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낡은 생각과 삶들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끔은 나는 그게 불편하다. 

그러나 더욱 불편한 것은 내 스스로가 낡아가면서 늙어간다고 느끼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딴에는 매일매일 새롭게 살자고 다짐을 해보는데 그 결과가 어떨지 알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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