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정신분석가 박우란씨는 천여 명의 여성들을 상담하고 책을 냈다. 그가 쓴 에세이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박우란 정신분석가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서 공통적인 양육방식을 발견했다. 또래 아이들이 한 집에 모여 노는 데 같이 있던 엄마들이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식탁에 간식이 차려지자 여자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 엄마 옆에 앉아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간식을 먹었다. 정서 교류를 좋아하는 여성의 본성에서 나온 태도다. 남을 맞춰주는 이타적인 마음이다. 아들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그 자리의 남자아이들은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려 아무도 식탁으로 오질 않았다. 그다음 연상되는 장면도 짐작이 되는가? 엄마들은 자기 아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접시에 챙겨서 아들에게 다가가 입에 넣어 주었다. 아들과 딸을 키우는 방식은 이렇듯 전혀 다르다. 딸보다 아들에게 젖을 더 먹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남을 돌보기를 좋아하는 여성들 중에는 자라면서 그 천성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하고 양보가 당연시되는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상담실 역시 마음이 병들어 찾아오는 분들 대부분이 남동생이 있는 ‘누나’들이다. 남동생을 보살피고 남동생에게 다 주어버린 누나들은 존재감이 생길 수가 없는 유년을 보냈다. 그렇다고 남동생이 누나를 평생 은인으로 여기느냐, 그것도 아니다. 남동생이 결혼하면 더 이상 상관 말라는 절교의 메시지를 듣기 십상이다. 누나는 자신이 꾸린 가정에서도 자신을 위한 삶이 없다.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지만 과거엔 아들을 낳으면 시부모로부터 인정을 받고는 가짜 자존감이 생겨 아들을 향한 애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드라마를 보면 여성에게 반해 돌진하는 남성들이 나온다. 결국 남성은 여성의 마음을 얻어내지만 그 여성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신의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하지 않거나 설득하지 못해서 여성을 찾아간다. 여성은 생전 처음 보는 중년 여성으로부터 우리 아들과 헤어지라는 통보를 듣거나 헤어져 달라는 절규를 듣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할 일이지 왜 그 여성에게 가서 헤어지라고 하는 것일까. 아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아들과 해결할 일이지 낯선 여성에게 찾아가 명령까지 하다니 무례가 도를 지나친다. 과도한 ‘돌봄’이 오류에 빠지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결혼한 여성은 나는 ‘내 남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여자의 아들’과 결혼한 것이었다! 라며 절망한다. 내 편이 아니었다는 배신감에 이혼을 꺼내 든다. 박우란 정신분석가 말대로 “우리는 애당초 그 여자의 아들과 결혼한 것이었는데 내 남자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구전설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나무꾼은 수탉이 되고 만다.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자식들을 데리고 가버린 뒤 하늘에서 재회하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나 나무꾼은 자신이 꾸린 가정에 집중하지 못한다. 늙은 어머니 생각에 한 번만 내려가서 만나보고 오게 해달라고 청한다. 천리마를 타고 내려가 어머니와 상봉을 하였으나 호박죽이라도 한 술 먹고 가라는 노모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말에서 먹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는 처자식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하늘을 보며 울기만 하다가 수탉이 되었다는 나무꾼 설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이런 정서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남편과 아빠의 정체성보다는 아들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속마음 말이다. 
  
정서를 거스르는 일은 쉽지 않다. 적절한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여성이 자신을 찾는 일을 해야 한다. 자신에게 ‘돌봄’을 할당하는 것이다. 아들을 소유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남동생 뒤치다꺼리하는 지시를 반항하고 거부해야 한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다. 남성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온전히 독립된 삶을 살아야 자신의 가족에 집중할 수 있다.

부모님 마음에 드는 자식으로 산다는 것은 행복한 내 인생을 살려는 부분과 겹칠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기를 원한다기보다는 내 말을 잘 들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게 본심이다. 우리는 결혼하면 아들에서 남편이 되는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과 사랑을 나누어야지 아들에게서 과도한 삶의 기쁨을 찾으려 하는 것은 독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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