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내일은 방학]

송원석 문산고 교사
송원석 문산고 교사

[고양신문] 마감이란 하던 일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와 정해진 기간의 끝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의미를 연결하면 정해진 기간에 일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끝을 맺었으니 시원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정해진 기간이 주는 스트레스와 결과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다. 그래도 이게 최선이었다는 ‘정신승리’로 또 다른 마감으로 나아가곤 한다. 

고3 담임에게 9월은 마감의 달이다. 이른바 마감 3대장(수시전형을 위한 생활기록부 마감,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마감, 수시 원서접수 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8월에는 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해 팔만대장경(입력과 수정하는 글자 수가 대략 8만자에 팔만 아프다고 해서)을 찍어내고, 수능 원서접수를 위해 시력(오류 발생 시 인생 마감이어서 학생별로 10번 이상 보아야 한다)을 포기하며, 수시 접수를 위해 학생들과 입씨름(1명당 6개 대학을 지원할 수 있어서 최소한 6번의 상담이 진행된다)을 벌인다. 9월 17일이 수시 원서접수 마감이니 나에게 ‘그날이 오면’의 그날은 9월 17일이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삶이 팔만대장경에 오롯이 담겼는지 걱정된다. 그들과 벌인 입씨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이 정해진 틀 안에서의 선택과 결과로 마무리는 되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대학 선택 전 마지막 상담은 주로 성적과 생활기록부 내용을 바탕으로 적정, 상향, 안정을 판단하게 된다. 선택을 위한 마지막 정보 제공이다. 요즘은 원서 자체를 본인이 지원 사이트에 들어가 입력하고 결재하기 때문에 상담이 곧 지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 상담은 영향력이 있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수시 결과가 인생의 마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랜 고민 끝에 작년과 같이 분석자료 맨 밑에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너희들은 좋겠다. 마감할 날이 많이 남아서.” 

여유 없을 아이들이 이 말을 미처 확인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다 100년 만의 가장 ‘둥근’ 달님에게 마음을 꺼내 본다. 

달님~ 사회복지사가 꿈인 S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4년제 대신 전문대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빠른 취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S는 자신의 상황을 첫 만남부터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등교해서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그녀 덕에 우리 반은 늘 신선한 공기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래보다 세상을 먼저 알아버린 S에게 따뜻한 공동체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진짜 세상에 나가기 전에 말입니다. 수시 원서접수비를 벌기 위해 한 달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S의 고단한 오늘을 달님에게 부탁드립니다~.
 

달님~ 부디 건강하기만 하라는 부모님의 기대 없는 바람이 스트레스인 P는 우리 반 대표 막내입니다.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다녀 ‘귀멸의 칼날’을 자막 없이 볼 수 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가 외계어로 느껴져서 ‘나는 누구인가?’가 제일 고민인 친구입니다. 그래서 개별적인 ‘나’로 인정받는 것이 P의 강력한 소원입니다. 자기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가족에 대한 원망이 많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가득합니다. 일본어 어학 특기자 전형으로 수시에 지원했지만 수능 국어 성적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또 다른 나와 매일 마주하는 P의 글엔 생각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너무나 주체적인 자기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릅니다. 달님이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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