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10년 넘게 상담 활동 이어온 정순영 교수, 김현숙 대표

범죄 피해자의 심리·정신적 안정 중요
미술은 피해자 마음의 시각·감성 언어 
단계별 상담 지원으로 자조모임도 결성
“피해자 곁을 늘 지키며 바라봐 주세요” 

고양·파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10년 넘게 상담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진 왼쪽부터)정순영 교수와 김현숙 대표는 "사실 우리 자신도 누구나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언제든 묻지 마 폭력을 당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 피해자"라며 "범죄 피해자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하기보다는 늘 곁을 지켜주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바라봐 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고양·파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10년 넘게 상담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진 왼쪽부터)정순영 교수와 김현숙 대표는 "사실 우리 자신도 누구나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언제든 묻지 마 폭력을 당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 피해자"라며 "범죄 피해자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하기보다는 늘 곁을 지켜주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바라봐 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고양신문] 2004년 문을 연 고양·파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사장 김상래)는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나 유가족들에게 형사사법절차상 권리를 보호하고, 신체·재산·정신적 피해 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학자금, 의료비, 긴급생계비, 이사비, 장례비, 직업훈련이나 취업지원, 심리치료, 주거지원, 각종 법률지원 등을 통해 피해자들이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한다. 

특히 상담 지원분과, 의료분과, 법률분과, 법정동행 봉사자 등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센터에게는 큰 힘이고, 피해자들은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씨앗이자 인생의 반려자로까지 여기기도 한다. 10년 넘게 상담분과에 활동하며 범죄 피해자들의 심리·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정순영 경동대학교 교수와 김현숙 색채심리미술연구소 대표를 만나 활동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정순영
간호학을 전공했는데, 특히 정신간호 전공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대상자를 돕는 일을 주로 해왔다. 학교나 병원 등에서 정신간호, 상담, 심리치료 등에 대해 강의도 하고 실제 심신의 어려움을 겪는 정신장애자, 가출청소년 등을 만나 상담을 이어가던 중 오현숙 교수의 소개로 범죄 피해자의 어려움을 접하고 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 

김현숙 상담사가 임상적 수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솔직히 처음엔 개인의 발전과 임상 수련을 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시작했다. 그런데 범죄 피해자 상담은 위기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회복될 때까지 긴 동행이 필요했고, 그런 분들과 함께하다 보니 오늘까지 오게 됐다. 다른 곳보다 센터에서는 일하면 할수록 애정과 책임감이 점점 더 커지더라. 

센터에서 주로 하는 역할은.
정순영
상담 지원분과 위원장으로 심리상담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을 한다. 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심의, 상담위원 관리, 심리지원을 위한 환경조성, 피해자와 상담위원 간 관계 형성 등 센터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현숙 상담 지원분과위원으로서 위원장님을 도와 피해자 심리상담과 미술치료 등을 하고 있다.

고양·파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단계적 활동을 통해 범죄피해자들의 일상회복을 돕고 있다. 사진은 프로그램 진행 장면.
고양·파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단계적 활동을 통해 범죄피해자들의 일상회복을 돕고 있다. 사진은 프로그램 진행 장면.

센터의 심리상담 과정을 소개하면.
정순영
피해자분들이 처음에 오면 12주 과정의 1:1 개인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그 후에는 2:8 집단 심리상담을 4~8주 이어간다. 보통 이렇게 약 4개월의 과정을 차분히 거치면 상당수의 피해자는 심신이 안정되기 시작하는 듯하더라. 꾸준히 센터를 찾는 분들을 위해 1년에 한 번 가족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힐링캠프를 연다. 대형 버스를 빌려 좋은 곳을 찾아 온종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피해자들은 스스로 자조모임을 결성해 홀로 설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하고 또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을 돕는 활동에도 나선다. 10년 넘게 매년 힐링캠프에서 만나는 피해자분이 5명이 넘는데, 만날 때마다 ‘우리가 함께 나이 들고 늙어간다’라면서 서로 웃음 짓곤 한다.

피해자 상담 시 주로 미술치료를 한다고 하는데.
정순영
다양한 심리치료방법들이 있지만, 미술치료는 언어보다 이미지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심리적인 외상으로 도저히 말로는 자신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기 힘들 때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며 감정을 정화해주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등 기본적인 효과도 크다.

미술은 마음을 표현하는 시각언어이자 감성언어다. 사진은 범죄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그림.
미술은 마음을 표현하는 시각언어이자 감성언어다. 사진은 범죄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그림.

김현숙 미술치료는 언어표현 발달이 아직 미숙한 유아나 어린이, 말하기 싫어하는 청소년, 정서적 소통이 필요한 노인층에 매우 유용하다. 미술치료는 흥미와 발산을 돋구기도 하고, 내면에 감춰져 있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매우 효과적인 시각언어인 동시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분노, 증오, 혼돈 등 마음의 상태를 상징으로 표현해내는 감성언어라고도 할 수 있다.

피해자의 일상으로 복귀에 상담이 실제 얼마나 효과가 있나.
김현숙
일반적으로 보면 일생생활로의 복귀는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거나 더는 주목할 문제가 되지 않을 때,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충전이 됐을 때다. 개인의 자존감이나 내적 힘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상담은 개인의 문제를 계기로 자신의 성향, 문제해결 능력 등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돕는다. 따라서 심리상담은 피해자의 일상생활 복귀를 직접적·실질적으로 돕는 과정은 아니다.

하지만 상담은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강단, 지혜 등을 기르면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회복의 깊이와 안정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일상으로 복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그 효과 역시 크다고 생각한다. 

범뵈피해자들이 미술치료 과정을 통해 표현한 작품들.
범뵈피해자들이 미술치료 과정을 통해 표현한 작품들.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를 들면.
정순영
묻지 마 살인, 폭행 피해자 등 억울한 피해자를 수없이 봤지만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아내가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 남편의 케이스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였는데 술을 마시고 귀가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부부가 한 달 이상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림에서 공격적인 심리 상태를 드러내 보였다. 양가 가족들도 술을 마신 부부 탓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타까움이 너무나 컸다. 

김현숙 딸이 누군가에게 살해됐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한 어머니의 경우다. 한동안 자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나 자신이 대리 외상을 입을 정도로 힘든 경우였다. 집단심리상담과 미술치료를 하면서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슬픔에 가득 찬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떠올리며 마침내 다시 일상을 회복하게 돼 너무나 보람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
정순영
범죄 피해자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힘내’, ‘괜찮아’, ‘잘 될 거야’ 같은 영혼 없는 위로다. 앞에서 말한 신혼부부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만 범죄 피해자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하기보다는 곁을 지켜주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바라봐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누구나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언제든 묻지 마 폭력을 당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 피해자 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돕는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김현숙 내가 하는 일이 업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삶을 만나는 일이라 늘 감사하다. 범죄 피해자나 정신적으로 힘든 분들에게 삶의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나는 사회가 됐으면 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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