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역화폐 예산삭감에 '고양페이' 존폐위기

 

정부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할인율 감소 불가피, 존폐위기
기재부 ‘지역화폐 무용론’ 달리
소상공인 70% “지역경제 도움”
김동연 “경기 지역화폐 유지” 

[고양신문] 민선 7기 고양시 대표정책인 지역화폐 고양페이 정책이 존폐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내년부터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일부 증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정부의 이번 전액 삭감 발표는 앞으로 지역화폐에 국가재정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보인 것이어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소상공인 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와 소상공인 살리기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이라는 비판도 일고있다.
 

올해 국비 지원 32억, 내년 0원 될까 
앞서 정부는 지난달 말 발표된 2023년 본예산에 지역사랑상품권 관련 예산을 한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전국 지역화폐 운영을 위해 정부가 지원한 예산은 총 6053억원. 하지만 내년부터 국비 지원이 끊겨버림에 따라 각 지자체별 지역화폐 운영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고양시 또한 올해 고양페이 할인(인센티브) 비용 예산으로 국비 32억40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내년 국비 지원이 없을 경우 인센티브 비율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고양페이 할인지원 예산을 국비4, 도비3, 시비3 구조로 운영해왔는데 국비 지원이 끊겨버리면 그만큼 예산 공백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2019년부터 본격 도입된 지역화폐는 지역 내 가맹점 결제액의 일정 비율을 할인하거나 캐시백 등으로 돌려주는 화폐이자 상품권이다. 이중 고양시는 ‘고양페이’라는 충전형 카드로 운영해왔다. 현재 고양페이는 1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가령 카드에 10만원을 충전할 경우 10%인 1만원의 인센티브가 반영돼 총 11만원이 충전된다(월 인센티브 한도액 1만원). 

뿐만 아니라 고양페이는 소비자들에게 소득공제 30%의 혜택이 주어지고 가맹점주 또한 신용카드보다 낮은 수수료로 부담이 적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고양페이 사용액 규모를 살펴보면 도입 첫해 2019년 287억원에서 2020년 1659억원, 2021년 2277억원으로 해마다 상승곡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의 경우 예년과 달리 위기극복지원금 같은 정책예산이 크게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6월 기준 1439억원이 사용될 정도로 지역화폐 정책이 이제는 정착단계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양페이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연 매출 10억원 이하 매장 이용가능) 사용량이 늘면 그만큼 지역 소상공인 매출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효과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지역화폐 효과 없다는 정부
실제 매출 상승효과 드러나

그러함에도 지역화폐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지역화폐는 기본적으로 지역에 효과가 한정되는 사업”이라며 “중앙정부에서 국민 세금 또는 빚으로 이를 운영하기 위해 재원을 배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른바 ‘지역화폐 무용론’을 이야기한 것인데 기재부는 주요 예산삭감 근거로 ▲지역화폐 정책효과가 특정 지역에서만 한정돼 나타나기 때문에 국가가 아닌 지자체 고유사무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 ▲실질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기재부 산하 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9월 보고서(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에서 “모든 지자체가 액면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에 지역화폐를 판매하면서 매출 증가 효과는 줄고 발행 비용만 순효과로 남게 됐다.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처럼 인접한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적었다. 즉 지역화폐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지역 간 경제단절만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기연구원은 2021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 경기도를 중심으로, 김건호 외)를 통해 “지역화폐 도입 이전에 소비유출이 심각했던 지역과 소비유입이 컸던 지역이 나눠져 있었다면 지역화폐 도입은 소비유출이 심각한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기재부의 ‘지역화폐 무용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양 교수는 “지역화폐는 국가적 과제인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행정안전부가 추진한 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국가사무”라며 “대기업과 대형 유통시설이 가져간 부가 모두 서울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지역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조치임에도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은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지역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빈약한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화폐 효과성을 입증하는 자료도 많다. 행정안전부가 의뢰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간한 연구용역보고서(지역사랑상품권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에 따르면 지역화폐 가맹점은 도입 후 월평균 매출액이 87만5000원(3.4%) 늘어난 반면 비가맹점의 월평균 매출액은 8만6000원(0.4%) 감소했다.  
 

실제로 고양시 소상공인들의 지역화폐 만족도도 높았다. 고양시정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간한 보고서(고양시 고양페이 가맹점 실태조사)에 따르면 총 3456명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2.6%가 ‘만족한다’라고 응답했으며 지역경제 활성화 여부에 대해서도 70%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5.1%는 실제 고양페이정책이 점포매출 상승에 기여했다고 응답했는데 이중 36% 이상은 10%이상 매출액이 상승했으며 29%는 10%이하, 34.9%는 5%이하의 매출상승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양시정연구원이 2021년 3월 낸 보고서(고양시 정책 만족도 및 고양페이 이용자 만족도)에서 응답자 56.3%가 고양페이 정책에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70.1%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답했다. 지역화폐 인센티브가 세금으로 지원되는 것에 대해서도 무려 86.4%의 응답자가 동의했는데 앞선 사례들 모두 기재부가 주장하는 ‘지역화폐 무용론’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양준호 교수는 “조세연구원 보고서와 달리 각 지역 소상공인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지역화폐로 인한 매출 증가 효과를 금방 알 수 있다”며 “지역 소상공인 매출이 늘면 고용도 함께 늘어난다. 실제로 지역화폐 도입 이후 대기업이 없는 지자체에서도 부가가치세가 늘었는데 그만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컸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했다. 
 

정부예산 별개로 지속가능모델 필요 
이처럼 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국회 차원의 ‘예산 증액’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여야 의원 모두 지역화폐 예산삭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며 이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역화폐 보완 방안 등을 다룬) 용역보고서 결과가 연말에 나오면 검토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지역화폐를 선도적으로 추진해온 경기도 또한 정부 예산과 별개로 예산지원을 이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도지사는 21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3회 임시회 2차 본회의 도정질의를 통해 “소상공인 점포 이용률이 지난 2년 동안 7%p 이상 증가하는 등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면서 “국회의원들과 논의하는 등 이번 예산 심의 과정에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예상보다 적은 금액이 (편성돼도) 경기도는 플랜B를 가져 만전을 기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고양시 관계자 또한 “정부 예산이 삭감되더라도 경기도 차원에서 예산지원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 고양페이 정책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인센티브 비율은 지원예산 규모에 따라 조정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올해 정부예산 지원여부와 별개로 장기적 안목에서 지역화폐 자립모델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준호 교수는 “인천의 경우 공기업 ESG경영모델 일환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역화폐 캐시백 예산에 14억5000만원을 투자한 사례가 있다”며 “기업들이 ESG경영 차원에서 기금을 기탁하면, 그 기금을 지역화폐 캐시백 예산으로 활용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재투자 조례를 통한 예산 확보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양 교수는 “부산시 사례처럼 지역 대형 영리은행, 대형 유통자본, 대형 건설사업 수주업체 등이 지역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할 경우 일정 정도 지역에 재투자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그중 일부를 지역화폐와 연계해 활성화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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