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지난주에 장터에 내다 팔기 위해서 땅콩을 일부 수확했다.
호미를 들고 땅콩 밭으로 향할 때만 해도 내심 기대가 컸다. 올해처럼 요사스러운 날씨에도 땅콩은 무럭무럭 잘 자라서 줄기를 허벅지 높이까지 뻗어 올렸다. 땅속 작물은 지상부의 세력을 보면 굳이 캐보지 않아도 그 밑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그런데 땅콩 서너 포기를 뽑아 올릴 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밑이 실하면 땅콩줄기를 잡아당길 때 묵직한 느낌이 들면서 땅콩들이 주렁주렁 딸려 올라오기 마련이다. 숲을 이루다시피한 땅콩줄기들의 세력을 보고 대풍을 기대하며 땅콩줄기를 잡아당기는 내 입에서는 어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작황에 어리둥절해하던 내 눈에 땅콩 밭 속에 고속도로처럼 뚫린 굴들이 들어왔다. 어른 손목 굵기의 굴들은 휘뚤휘뚤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오호라, 범인은 바로 두더지였다. 땅콩이 영글어야 할 자리마다 두더지가 경부선에 호남선까지 굴을 뻥뻥 뚫어놨으니 수확량이 급감할 수밖에.
기왕 벌어진 일, 나는 애써 마음을 추슬러가며 땅콩 밭 한 이랑의 수확을 끝냈다. 하우스 안에 땅콩을 펼쳐서 널어놓으니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양을 보니 꽤나 속이 쓰리면서 이 녀석을 어쩐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유기농을 하면 두더지의 방문은 피할 길이 없을뿐더러 개체수도 해마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녀석들은 온 밭에 굴을 뚫고 다니면서 작물들의 뿌리를 건드려서 피해를 끼치기도 하는데 내가 두더지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서 땅콩을 캐기 전까지 나는 농장 곳곳에 두더지굴이 뚫려있어도 무심히 지나쳤다.
하지만 반타작이 난 땅콩을 보고 있자니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결기가 일었고, 나는 인터넷을 통해 두더지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두더지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두더지가 농사에 해를 끼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녀석은 마치 은혜를 갚기라도 하듯 열심히 땅굴을 파고 다니면서 산소를 공급해 지력을 높여주고, 굼벵이와 같은 해충들을 부지런히 잡아먹는다. 그래서 옛날 농부들은 두더지를 미워하기는커녕 당당한 농부로 대접해주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면서 두더지를 쫓아낼지 아니면 공생을 할지 고심을 하던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땅콩은 어쩐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내년부터 땅콩 밭에만 페트병 바람개비를 만들어서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경험자들 말에 의하면 두더지는 진동에 민감해서 페트병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아갈 때 발생하는 진동을 피해서 다른 곳에 굴을 뚫는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만약 페트병 바람개비의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고 나로서는 그래 너도 농부해라 하고 공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게는 땅콩의 수확량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할수록 풍성하고 풍요로워진다. 자유농장의 김장농사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요즘 주변농장들은 배추와 무 밭에 벌레가 들끓어서 끌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농장의 배추와 무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농장들은 기계로 로터리를 치지만 우리 농장은 농기구로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자연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우리를 미래를 내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