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정치학 박사)
[고양신문]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는 선거 때 하는 정치와 선거 이후에 하는 정치를 구분한다. 선거 정치는 경쟁의 정치이고, 선거 이후의 정치는 주고받는 거래(bargaining)의 정치라고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학자인 쉐보르스키 교수가 말했다.
선거 정치와 거래정치 모두 사회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민주주의 규칙이자 규범이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선거시기에는 경쟁의 태도로, 선거 이후에는 거래의 태도로 정치에 임할 때,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만약 선거 이후에도 경쟁적 태도로 정부를 운영하면, 격렬한 여야 갈등, 정치 양극화가 심화한다. 한국의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선거 캠페인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치를 이끄는 정부를 ‘캠페인 정부’라고 칭하고, 캠페인 정부는 과도한 정치화와 양극화된 대립의 상황을 만들어 민주주의 정치를 작동 불가능하게 하고, 독단적인 전제주의 정치를 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선거 정치의 특징은 대립과 경쟁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데, 1표라도 많으면 당선이고, 1표가 부족하면 낙선이다. 당선자는 권력을 위임받아 4년 혹은 5년의 임기 동안 예산권과 인사권, 공권력을 행사한다. 패자에게 주어지는 권한은 없다. 패자는 일반 시민과 같은 위치에 선다. 선거 결과에 따른 대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후보와 선거운동본부가 한 팀을 이루어 상대 팀과 경쟁한다. 선거에서 타협은 없다. 부정선거나 불법선거와 같은 규칙위반을 하지 않으면 된다.
선거 이후의 정치는 거래의 정치다. 거래라는 단어는 백화점 홍보 포스터에 있는 바겐세일의 바겐(bargain)이다. 상인과 소비자가 물건값을 흥정하는 상호작용이 거래이다. 상인은 이문을 남겨야 하고, 소비자는 구매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기에 상인과 소비자의 목적은 상호 대립이다. 상인이 이득을 보면 소비자가는 손해를 보는 적대적 대립, 제로섬 관계이다. 그런데 상인과 소비자가 대립하면 서로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다. 상인은 팔지 않으면 소득이 없고, 소비자는 원하는 물건을 사지 못하면 헛수고다. 결국 상인과 소비자는 적정한 가격으로 거래해야 한다.
선거에서 승자가 되었다고 하여 선거 이후에도 승자가 모든 정책을 독점하는 승자독식의 정치는 패자의 폭력적 저항을 촉발한다. 정부 운영에 있어서 독식과 저항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파행으로, 교착상태와 작동 불능으로 이끈다. 쉐보르스키 교수는 선거로 당선된 권력자가 정치적 상대를 억압했던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면서, 억압적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최장집 교수는 선거로 당선된 권력자가 권한을 독단적으로 행사할 때, ‘전제정치’ 상황이 도래한다고 말했다. 선거 경쟁은 마치 전쟁하듯이 경쟁해도 된다. 하지만 선거 이후는 거래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 시민이 거래의 정치라는 관점을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하여 정치 지도자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우리 도시의 시장, 내가 속한 동호회와 결사체의 회장과 임원이 상대 존중과 거래의 정치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를 배제하는 독단의 정치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호존중의 거래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의 지도자이다. 상대 배제, 승자독식의 대립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자신도 모르게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전제정치를 불러오는 잠재적 독재자이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사람들 모두가 함께 다스리는 정치이다. 현명한 철학자도 고정관념과 지적 한계가 있어서 인류는 집단지성과 협력에 기반한 다수의 지배를 철인정치나 소수 엘리트의 지배보다 우수한 정치체제라 인정해 왔다. 민주주의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를 보장하고 각자가 장점을 발현하고, 이견을 다양성으로 승화시킨다. 이견을 다양성으로 승화시키는 민주주의 정치의 태도와 방법으로 ‘거래’는 중요한 민주주의 태도이자 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