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교통안전 칼럼
[고양신문] 필자가 30년 전 서울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할 때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노인들을 잘 볼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60세가 되면 환갑잔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요즘에는 70세가 되어도 칠순 잔치를 거의 하지 않고, 70세는 청춘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주변에서 정정한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언제나 꽃 청춘, 꽃할배 운전 중’, ‘어르신 운전 중’, ‘고령 운전자 차량’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차량이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차량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음을 실감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고령 운전자가 늘어감에 따라 그로 인한 교통사고 역시 늘고 있다. 올해 3월 말 부산 서구에서 80대 운전자가 몰던 SUV 차량이 시내버스 정류장을 덮쳐 피해자 두 명을 들이받고 정류장 뒤쪽 벽에 부딪힌 후 멈췄으나 이 사고로 버스를 기다리던 60대 남성이 숨지고 60대 여성이 다리를 다치는 등 중상을 입는 교통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인구는 총 5178만 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는 인구는 약 813만 명(15.7%)이다. 한국 사회는 국제연합(UN) 고령 사회 기준(14%)을 진작에 초과한 상태다. 국가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고령층 인구도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매일 운전을 하는 ‘고령 운전자’ 숫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과실로 3만107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전체 교통사고 20만9654건 중 14.8%에 달하고 2016년 11.1%에서 비율이 3.7%나 상승한 수치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2018년부터 자치단체마다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10만 원이 충전된 교통 카드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반납률이 2%대에 그쳐 그 효과가 크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인센티브 지급보다는 면허를 반납하면서 생기는 이동의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운전면허 반납제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고령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랫동안 운전을 해왔는데 갑자기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라고 하면 서운한 마음도 들 것이고, 노인을 ‘교통사고 유발자’인 것처럼 대하는 시선에도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운전면허 반납을 망설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이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고령 운전자’ 문제가 이미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정치권이나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은 아직 걸음마 수준으로 보인다. 시력, 순발력 등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고령층은 운전 중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워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고령 운전자가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이동권을 보장해 주면서 운전면허 자진반납률을 높이는 실질적인 대책이 더욱 절실하다.
먼저,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고령자들이 외출할 때 택시, 버스는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고속버스, KTX 요금은 파격적으로 할인해 주어야 한다. 일본처럼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대중교통 요금은 받지 않고, 온천 할인이나 구매 물품 무료 배송 등 혜택을 주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둘째, 고령 운전자 가족들은 고령 운전자의 야간 운전을 자제시키고,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할 수 있도록 유도·권유해야 한다.
셋째, 자진반납 외의 또 다른 대책도 필요하다. 2019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는 면허를 갱신하려면 3년에 한 번 적성검사와 교통안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해마다 상황 판단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노인의 특성상 이 주기를 줄여야 한다.
넷째, 비상 제동 장치 부착, 최고 속도 제한, 야간·고속도로 주행 금지 등 일정 조건을 달고 허용하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일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운전자마다 운전 능력이 다르므로 의사, 전문가와 경찰 등의 의견을 반영해 개인별로 운전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섯째, 고령 운전자 본인도 운전할 때는 앞차와의 거리를 넉넉하게 유지하며 서행운전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야간 및 장거리 운전은 자제하고, 평소 눈이 침침하거나 조금만 운전해도 피곤하다고 느낀다면 최대한 운전을 피해야 한다.
지금의 노인들이 단군 이래 대한민국 최고의 부국강병을 이룬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노인분들 중에 ‘평소 운전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급할 때 운전도 할 수 없는데, 서러운 마음마저 든다’고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고령자는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세월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운전은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신체적 노화로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고령자들이 본인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자고 드리는 제언이다.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교통관리계 경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