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행신2동 주민자치위원)

행신2동 주민자치회(회장 윤찬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행신역 자전거보관소 대책위원회’가 
행신2동 주민자치회(회장 윤찬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행신역 자전거보관소 대책위원회’가 주민서명을 받는 모습.

[고양신문] 지난 8월, 고양시 행신동 주민들은 한여름 햇볕만큼이나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누구는 난생 처음으로 거리 현수막을 들었고, 누구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멋쩍게 피켓을 들었다. 지금까지 가끔 전단지를 받곤 했는데 이번에는 행인들에게 나눠주는 위치에 섰다. 역대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는 휘청되는 우산을 부여잡고 기자회견도 열었다. 필자도 주민 서명을 전달하려 고양시 거주 8년 만에 처음으로 시청을 가보았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에게 황당한 일이었다. 바로 지난 6월부터 공사가 시작된 행신역 앞 자전거 주차장 문제이다. 처음에 바닥을 파고 대형 철골 구조물이 설치되어도 주민들은 이 시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부근에 보관된 자전거를 이동해달라는 안내 현수막이 전부였으니 지나는 사람마다 궁금증만 키울뿐이었다. 마침내 8월 들어 시설 내부에 2층의 자전거 보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시가 그린모빌리티 사업으로 추진하는 자전거 주차장이었다.

행신역은 KTX역으로는 광장이 좁은 곳이다. 역사를 나오면 크지 않은 공간이 있고 그 아래 인도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 광장 인도 중앙에, 게다가 삼거리 횡단보도 바로 앞에 대형 구조물이 드러선 것이다. 이러면 인도의 흐름이 가로막히고 출퇴근 시간에는 행인, 자전거, 킥보드 등으로 안전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자전거 보관 효과에서도 기존에 설치된 30대분 간이거치대를 없애고 같은 장소에 50대분의 대형구조물을 설치했으니 1억 6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광장을 숨막히게 하면서도 고작 20대 공간을 늘릴 뿐이다.

긴급하게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대응에 나섰다. 8월 초부터 피켓팅,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자전거 주차장의 문제점을 알리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양시는 ‘우선 완공하여 사용하고 이후 대안을 논의해 보자’하고, 의아하게도 지역 시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마무리 공사가 계속되자 주민자치회는 공식으로 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전면 대응에 나섰다. 매일 행신역, 아파트 단지 등에서 주민서명을 받았고, 1차로 678명의 서명을 고양시에 전달했다. 지역언론들도 자전거 주차장 위치의 부적합성을 보도하면서 이 문제가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는 현안으로 떠올랐다.

행신역 앞에 설치된 자전거보관소 모습
행신역 앞에 설치된 자전거보관소 모습
8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던 행신2동 주민자치회
8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던 행신2동 주민자치회

 

개인적으로는 이 자전거 주차장이 그린모빌리티 사업이라는게 더욱 어이가 없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일상생활에서 책임을 요청받는다. 지금 행신역 화단을 따라 거치대에 즐비하게 세워진 자전거들은 시민들의 전향적인 참여를 보여주며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광장 인도 한가운데 대형 구조물을 세우는 방식은 오히려 자전거 이용에 부정적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자전거 이용자들도 ‘이건 아니다’며 한탄하는 투박한 그린모빌리티 행정이다. 

다행히 추석을 앞두고 고양시가 자전거 주차장 이전하겠다고 알려왔다. 우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하며 마음이 복잡했던 주민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다. 비록 이전 비용은 추가로 들겠지만 주민들과 고양시는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열매를 거두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지역주민들은 주민자치의 자부심과 신뢰를 얻었다. 거의 완성된 구조물을 이전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걱정과 조언들도 많았으나 그렇다고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우리 동네를 우리가 가꾸자며 서로를 독려했다. 이웃들은 주민서명대로 찾아와 이전 활동을 응원하고, 퇴근길 자녀들은 행신역을 찾아 동네 일에 나서는 부모님이 자랑스럽다고 속삭였다. 주민자치회 활동이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모으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 동네 지킴이로서 신뢰를 쌓았다.

고양시는 그린모빌리티에서 주민협치의 중요성을 경험했을 것이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는 주변 환경과 부합하면서 주민 참여를 이끌어야 하는 일이다. 기후위기를 맞아 주민들도 에너지 절약에 적극적이다. 지자체는 지역사회 그린모빌리티 실질 주체가 주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자전거 주차장 이전 결정을 계기로 주민협치의 새 행정을 기대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행신2동 주민자치위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행신2동 주민자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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