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임진각 수풀누리

평화누리공원과는 또다른 임진각 숨은 명소
다채로운 테마정원, 여유로운 수변데크 산책
구절초, 갈대, 수크령… 수수한 가을정취 
사방 어두워지면 펼쳐지는 화려한 레이저쇼  

임진각 수풀누리의 갈대습지와 산책데크
임진각 수풀누리의 갈대습지와 산책데크

[고양신문] 대한민국 1번 국도의 가장 끝부분,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에 자리한 임진각. 군사분계선과 불과 7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임진각에 대한 이미지는 세대별로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중년 세대들은 임진강철교 앞에 멈춰선 녹슨 증기기관차와 철도중단점, 북녘땅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슬픔이 어린 망배단, 여러 종류의 전쟁 관련 조형물 등 안보관광지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세계평화축전이 임진각 일원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기존의 관광단지 동쪽 30만 평 너른 땅에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라는 잔디언덕이 만들어지면서 임진각은 이제 휴일이면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여유로운 쉼터가 됐다. 푸르른 잔디와 잔잔한 연못을 배경으로 수천개의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바람의 언덕,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한 대형 야외조형물들은 멋진 포토존을 선사하는 평화누리공원의 시그니처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카페 '안녕'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카페 '안녕'

이처럼 50여년 전 처음 만들어진 임진각 1구역(기자의 임의적 명명이다)이 전쟁의 아픔과 통일의 의지를 웅변하고 있다면, 임진각 2구역 평화누리공원은 밀레니엄 세대가 꿈꾸는 화해와 평화를 누리고 즐기는 장소가 됐다.

임진각의 변신은 이게 다가 아니다. 몇 해 전 평화누리공원 동쪽에 조성된 ‘평화누리캠핑장’은 매월 예약사이트가 열리기가 무섭게 주말 예약이 매진된다. 이같은 인기의 이유는 넓고 쾌적한 시설은 물론이고, 캠핑장 뒤편에 ‘수풀누리’라는 드넓은 자연친화적 산책공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각 3구역으로 불릴만한 ‘임진각 수풀누리’는 캠핑과 상관없이 한나절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없다. 특히 가을빛이 물들어가는 지금이 수풀누리의 수수한 매력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수풀누리 진입로인 코스모스길 [사진제공=신도제일교회 시내산악회]
수풀누리 진입로인 코스모스길 [사진제공=신도제일교회 시내산악회]

수풀누리를 찾아가려면 내비게이션에 임진각이 아닌 평화누리캠핑장을 찍고 출발하자. 엄청나게 넓은 무료 주차장이 방문객을 반긴다. 차에서 내려 캠핑장과 평화누리 중간의 코스모스밭 사잇길을 따라가면 수풀누리에 닿는다. 아이들과 동반한 가족이라면 수풀누리 초입 모험놀이터를 지나칠 수 없다. 통나무로 만든 다양한 놀이시설이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들기 때문이다. 

놀이터를 지나면 서로 다른 테마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정원디자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용한 소재도, 담아낸 이야기도 제각각이지만, 정원작품들을 묶어주는 주제는 평화와 화해다. 무엇보다도 과하지 않게 표현된 인공적 조형작품과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을꽃들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하나의 풍경을 완성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속에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다채로운 정원조경작품
자연과 어우러진 다채로운 정원조경작품

정원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길은 잔디동산으로 이어진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진 두 개의 야트막한 동산 마루에는 각각 남자와 여자의 얼굴라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존재와의 어쩔 수 없는 거리, 그 거리를 건너뛰고 싶은 간절한 그리움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사이로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멋진 사진의 배경이 되어준다.    

수풀누리는 연못과 정원이 잘 어우러져 있다. 연못에는 갈대와 부들, 연과 수련이 가득하고, 물가에는 억새와 수크령이 햇살을 흩트리며 하늘거린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수변테크길도 가을풍경의 일부인 양 느긋하다.        

[사진제공=신도제일교회 시내산악회]
[사진제공=신도제일교회 시내산악회]

준비해 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피크닉을 즐기고 싶다면 탁 트인 잔디광장 주변, 또는 수풀누리 곳곳에 마련된 원두막과 벤치에 자리를 잡아보자. 수풀누리 자체가 임진각 관광단지나 평화누리에 비해 훨씬 한가로워 일행들만의 아늑한 공간을 확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해가 지면 수풀누리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가장 안쪽 창포섬 옆에 단단한 뿌리와 듬직한 줄기, 풍성한 잎과 화사한 꽃을 매단 거대한 인공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하나그루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무에서 매일 저녁 화려한 영상쇼가 펼쳐진다. 데크길을 따라 갈대연못을 가로질러가면 화려한 레이저불빛이 넓은 자연풍경을 스크린 삼아 펼치는 환상적인 조명쇼도 감상할 수 있다. 

대형 나무조형물인 '하나그루'는 해가 지면 레이저쇼 스크린으로 변신한다.
대형 나무조형물인 '하나그루'는 해가 지면 레이저쇼 스크린으로 변신한다.

임진각 1구역이 평화를 웅변하고, 2구역이 평화를 그려낸 곳이라면, 이곳 3구역 수풀누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넘어 풀꽃과 나무, 새들과 풀벌레와 같은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더 큰 의미로 확장된 평화세상의 일부가 되는 곳이다. 마침 그곳에 잠시 머물고 있는 가장 예쁜 가을이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험놀이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험놀이터
수풀누리 곳곳에 마련된 원두막 쉼터
수풀누리 곳곳에 마련된 원두막 쉼터
평화누리공원 무대에서는 주말이면 야외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평화누리공원 무대에서는 주말이면 야외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평화누리언덕을 둘러싼 설치미술작품 리본에 소원문구를 적어넣고 있는 커플
평화누리언덕을 둘러싼 설치미술작품 리본에 소원문구를 적어넣고 있는 커플
[사진제공=신도제일교회 시내산악회]
[사진제공=신도제일교회 시내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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