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쳐, 고양을 그리다]③ 구 능곡역 ‘능곡1904’
어반스케쳐스 고양 첫 전시 장소
구 능곡역사 새단장한 ‘능곡1904’
토박이들의 추억 가득한 장소
레트로한 문화 플랫폼으로 변신
[고양신문] 10월 14일 ‘능곡 1904’에 어반스케쳐스 고양 전시 설치를 마쳤다. 이 전시장은 구 능곡역사를 개조한 공간에 있는 갤러리인데, 처음 이 갤러리를 보자마자 우리 전시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역사성도 있고 교통도 좋은데다가 크기도 적당했다. 고양시 관광과의 도움을 받아 대관 예약을 했다.
이번 전시는 약 25명 정도가 참가하는 단체전인데, 아침에 각자 자기 그림을 갖고 와서 걸게 된다. 그림을 못 가져오는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명이 모이면 꼭 해결사가 나타난다. 이날도 한 분이 나타나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레일과 조명 위치를 조정하고, 건물 밖의 현수막 거는 것도 간단히 해결해주셨다.
80년대 핫플레이스였던 능곡역 앞
그림을 걸고 몇 명이 남아서 주변을 스케치했다. 스케쳐 한 분이 이 동네에 추억이 있다고 하신다.
“아빠가 능곡역에서 근무하시면서 우리 집이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살았거든요…. 저 앞에 보이는 2층 커피숍 자리가 그 당시로서는 가장 힙하고 멋진 곳이었지요. 당시는 능곡역 앞이 상당히 번화했고, 심지어 역전 바로 옆에 나이트클럽도 있었답니다. 옛날에 알던 가게가 생각나서 오늘 몇십 년 만에 가보니까 그때 주인아줌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딸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해서 걱정이네요. 어렸을 때 봤던 나무 선반이 아직도 그대로 있더라고요. 할머니랑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오더군요.”
시대의 특징 보여주는 철근콘크리트 한옥
능곡역은 1904년 경의선 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고, 현재 ‘능곡 1904’로 사용되는 구역사는 1978년에 건축되었다. 2009년 경의선 전철이 개통하였는데, 구역사로부터 200m 남쪽에 전철역사를 신축했다. 2021년에 옛 능곡역사를 복원하고 새로운 공간을 증축해 복합 문화공간 ‘토당 문화플랫폼 1904’가 문을 열었다.
‘능곡 1904’는 70년대 후반에 건축된 건물인데, 그때는 한참 콘크리트 한옥이 유행하던 때라 이 건물도 철근콘크리트 한옥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여느 한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한옥은 건축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한옥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런데 한옥도 안 좋은 점이 있다. 비가 왔을 때 지붕 기와 끝에서 떨어진 물이 튀어서 벽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한옥은 흙벽이 많았기 때문에 빗물 처리가 큰 문제였다. 그래서 시골집이나 절집들은 돌로 된 기단을 높게 세워서 빗물을 기단에 튀게 한다. 그런데 근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은 기단을 설치할 여건이 안 된다.
그때 마침 양철로 된 물받이가 나와서 도시형 한옥은 너나없이 모두 양철 물받이를 달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옥이 양철 물받이가 있다면 물받이를 포함한 형태를 한옥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70년대에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열광이 생겨나서, 관공서나 공공건물을 지을 때 한옥 형태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때 지었던 한옥은 외형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모두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흥미롭게도 구능곡역사는 궁궐이나 사찰 같은 전형적인 한옥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도심형 한옥, 즉 슬레이트 지붕에 양철 물받이를 달아서 처마가 다소 과장된 그런 형태를 모델로 삼은 것 같다. 아마도 예산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렇게 지었겠지만 능곡역처럼 절충형 한옥 스타일은 사례를 찾기 힘들고, 그만큼 건물의 보존 가치는 있다고 본다.
“전시 마지막 날 포트럭파티도 엽니다”
‘능곡 1904’가 온전히 보이는 곳에서 그리려면 길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역 건너편에는 그늘이 없어 해가 약한 아침에 그림을 그리러 나섰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서서 스케치를 하고 손님들을 맞으러 전시장으로 향했다. ‘능곡 1904’ 옆에는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유 부엌 ‘키친 1904’가 있는데, 아담하고 깔끔한 공간이다.
쿠킹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 주방 시설도 있고 식탁도 있어서 전시 마지막 날인 22일에 포트럭 파티를 하려고 예약을 했다. 회원 각자가 음식을 준비해와서 먹고 마시는 자리다.
그날은 전시로 올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니까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우리나라 잔치는 누가 오든 마다하지 않는 법이니, 많이들 오셔서 그림도 감상하고 즐거운 대화도 시간도 가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