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과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부쳐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수정해야”
“인권 지도시 동성애, 성전환, 낙태 등의 사례가 포함되지 않아야”
“성적 자기결정권 등 청소년의 가치관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용어 삭제”
교육부는 지난 9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주요 국민의견을 발표했다. 성소수자 청소년의 존재를 지우고, 섹슈얼리티 등 청소년의 성적 권리 관련 용어를 ‘가치관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삭제해야 된다는 의견이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접수되었다는 ‘주요 의견’을 보며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또 국민이 아니야?”
교육부는 어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변하고 있는가? 교육부가 수렴한 주요 국민의견은 일반국민 4751건, 학생 461건, 교원 2648건으로 학생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교육부는 일부 보수계의 의견을 ‘국민 전체의 의견’인 마냥 호도하고, 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주체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육부는 ‘국민 의견’이라는 이름하에 성소수자 국민을 삭제시키려는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했다. 뿐만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 등 이미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권의 영역마저 ‘논쟁적 사안’으로 격하시켰다.
스쿨미투부터 ‘n번방’, ‘L 성착취 사건’까지 아동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약 3년간 10대 피해자는 11.4배 증가했다. ‘가치관의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교육현장에서의 성적 논의를 차단해서는 안 된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청소년에게는 성적 폭력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한 환경에서 성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가 ‘주요 국민의견’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성적 권리다.
이렇듯 성적 권리를 포함해 인권에 기반한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시기임에도, 각 지자체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지난주부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주민 청구인 서명이 진행중이다. 충남도의회에서는 지난 9월 주진하 의원이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불손한 행동을 하는 건 조례가 만들어진 탓”이라며 조례 폐지를 요구했다.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주민 조례청구인 명부가 서울시의회에 제출되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주민 발의를 보고, 우리는 또 다시 청소년이 시민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 발의는 만 18세 이상의 주민만이 참여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처럼 청소년 당사자의 삶에 직결된 사안에서도, 청소년은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없다. “학생의 과도한 권리 때문에 교육현장이 문란해진다”는 어른들의 의견과 청소년이 주민발의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학교는 옛날보다 좋아졌는가? 학생은 학교에서 과도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가? 2020년 서울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소위 ‘간접체벌’을 포함하면 초·중·고 학생 중 약 20~40%가량이 체벌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소위 ‘두발 자유화 선언’을 했음에도, 머리 모양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응답이 중·고등학생의 약 40% 이상으로 나타났다.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말할 때가 아니라, 실질화를 말할 때이다.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1호 정책으로 ‘9시 등교제 자율화’를 내걸었다. 사실상 개별 학교의 입시불안을 가중시키고, 학습시간에 대한 경쟁을 심화시키는 ‘0교시 부활’ 정책이다. 임태희 교육감은 ‘자율의 원칙’에 입각했다며, 학교별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등교시간을 정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청소년의 정치적 자유도, 시민적 권리도 제약된 상황에서 ‘민주적 절차’는 공허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11월 3일은 학생저항의 날이다. 학생의날은 1929년, 학생들이 일제식민지정책에 항거한 날을 기념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1929년의 항거가 있은지도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학생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저지하고, 학생인권의 실질적 강화를 이뤄낼 때이다. 11월 3일,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학생들은 분노한다!> 집회가 개최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막고자 하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