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고양도시포럼 도시정비 세션

 

[고양신문] 국내외 석학들을 초청해 도시문제 담론을 나누고 비전을 공유하는 고양시 대표 국제포럼인 고양도시포럼이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의 일정으로 마무리됐다. 킨텍스에서 개최된 이번 포럼은 ‘시민과 함께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주제 아래 도시재정비, 기후위기 대응, 평생학습 등의 분야로 나눠 발제와 토론을 진행했다. 

가장 관심이 높았던 분야는 역시나 도시정비였다. 원당, 능곡 등 원도심 노후주거지 재정비 현안이 아직까지 산적한 가운데 1기 신도시 노후화 문제 또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정부가 오는 2024년까지 ‘도시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 수립을 예고한 가운데 고양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26일 고양도시포럼 정책포럼세션 3번째 순서를 통해 가늠해봤다. 


유해연 “신도시와 원도심의 균형 있는 개발 추진해야”
피터비숍 “주민들과의 지속적 소통·협업이 성공 비결”
마크 사우스콤 “기존 요소 중 남길 것 추리는 지혜 필요”


유례없는 일산신도시 재정비 계획
특별법 제정, 마스터플랜 수립 시급

고양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일산 1기 신도시 정비사업. 현재 윤석열 정부가 특별법 제정 추진 및 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고양시 노후주거지 전반에 대한 통합정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한 상황이다. 

‘1기 신도시 및 원도심 주거환경 통합정비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유해연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현재 뜨겁게 일고 있는 일산신도시 아파트 재건축 추진과 관련해 개별단지 차원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종합 주거정비 계획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후반 서울지역 택지공급 부족현상 해결을 위해 개발된 5개 1기 신도시 중 하나인 일산신도시는 총 면적 476만평(1만5736㎢), 계획인구 27만6000명 규모(6만9000가구)의 초대형 택지개발사업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1기 신도시 인근 중소규모 택지지구 난개발과 이로 인한 지역 간 단절 △부실·날림공사와 이에 따른 아파트 노후화 △주택 위주 도시조성에 따른 자족기능 부재와 베드타운화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 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최근 일산지역 구축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재건축 바람이 크게 불고 있지만 특별법 제정과 안전진단 간소화 등 민감한 현안을 둘러싼 온도차는 여전하다. 유해연 교수는 “현재 재건축 추진위 주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안전진단 절차 간소화와 2030도시계획에 일산신도시 재건축계획을 반영해달라는 것”이라며 “하지만 고양시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 주민들의 입장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단지에만 재건축을 허가해주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통합 재건축 추진위의 경우 단지 규모가 3000세대에 육박하는 만큼 시 입장에서도 충분한 검토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원도심 지역에 남아있는 노후주거 재정비 사업 또한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져 있다. 

유해연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유해연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유해연 교수는 “이 정도 규모의 도시노후화 문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유례가 없는 새로운 도전”이라며 “현행 제도검토와 기존 발의된 8개 관련 법안의 비교분석을 통해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한편 주민, 지자체 의견수렴을 통한 ‘도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 수립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고양시에 필요한 정책과제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기준 개정 △총괄계획가(MP) 운영 및 선도단지 구체화 방안 마련 △재정비 현황 모니터링을 위한 1기 신도시 재정비 종합정보관리체계 및 주민지원 전문기구 마련 등을 제안했다. 

유해연 교수는 마지막으로 “신도시와 원도심의 균형 있는 재건축+리모델링 표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장기적인 계획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미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도시계획 수립 필요

외국의 경우 이러한 복잡 다양한 노후도심 재정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까. 1회 고양도시포럼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킨텍스를 찾은 피터비숍 영국 런던대학교 건축학 교수는 본인이 총괄계획가를 맡아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런던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을 비롯해 여러 사례들을 중심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피터비숍 교수는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유기적이고 자기조직화 △수평적인 참여와 상호협력 △네트워크와 교류의 장 △접근성 △컴팩트시티 등의 특성을 이야기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도시가 늘 열려있는 체계 속에서 새로운 사건과 현상, 이슈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피터비숍 교수는 “도시는 하나의 생태계이며 항상 변화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유연하게 수립해나가야 한다”며 “도시 고유의 특성을 잘 반영한 맞춤형 건축설계가 필요하고 다양한 삶의 양상과 자연과의 공존, 다양한 용도가 혼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피터비숍 런던대학교 교수
피터비숍 런던대학교 건축학 교수

런던 킹스크로스 사례를 살펴보자. 영국 런던 내 2만ha 규모의 구도심을 재정비하는 이 사업에서 피터비숍 교수는 기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과 장소를 최대한 남겨놓으면서 신규건물과의 유기적 조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뒀다. 그 결과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지역은 현재 런던에서 부동산 가치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와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터비숍 교수는 “건축가들은 전문지식이 있지만 그 지역에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것들이 채워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재정비종합계획을 수립하는 5년 동안 3만여 명의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건물 짓는 데만 주력한 것이 아니라 공공공간, 녹지, 토지활용 방안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마치 훌륭한 소설가가 원고를 탈고하고 계속 수정해나가는 것처럼 지속적인 협업과 논의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정들이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의 성공비결이라는 설명이다. 피터비숍 교수는 “시민들도 조금씩 지역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여의 폭도 늘어나고 재정비 과정에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개발업체와 시정부, 시민들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들을 할 수 있었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도시정비의 핵심은 적응”이라고 강조하면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도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스마트 도시 △에너지사용을 최소화하는 건축물 도입 △다양하고 복합적인 건물 용도 등을 이야기했다. 


도시재정비 성공요소는 주민
계획 전반에 주민참여 보장해야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장소도 늘 변화하고 우리도 변화에 적응하고 선도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뉴질랜드에서 온 마크 사우스콤 빅토리아 대학 교수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고갈, 코로나19 방역위기 등 다양한 외부사건에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토지의 복합용도설계를 강조했다. 가령 일터와 주거지가 명확하게 구분되던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는 재택근무의 확대 등으로 인해 삶터와 일터가 혼합되는 공간으로서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마크 사우스콤 교수는 “앞으로 고밀도 주택은 정비할 때 공유시설과 여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부대시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크 사우스콤 뉴질랜드 빅토리아 대학 교수
마크 사우스콤 뉴질랜드 빅토리아 대학 교수

마크 사우스콤 교수는 도시재정비 방향에 있어 도시와 도시,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사회문화적 소통체계 구축을 중요시했다. 아울러 도시와 사람을 잇는 좋은 매개체로 골목과 전통시장, 문화공간 같은 장소를 꼽았다. 도시재정비 과정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남겨놓은 채 새 건물과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크 사우스콤 교수는 원당역 인근 성사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해 빅토리아 대학 학생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1년 가까이 진행된 프로젝트를 통해 고양시청에서부터 원당시장, 원당역까지 이어지는 보행로 구성, 뉴질랜드 리버사이드 마켓을 모티브로 한 원당 전통시장 재정비 사업 등의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마크 사우스콤 교수가 작년 한해 대학생들과 함께 원당성사 도시정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
마크 사우스콤 교수가 작년 한해 대학생들과 함께 원당성사 도시정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
빅토리아 대학 학생들이 구상한 원당성사 도시정비계획안
빅토리아 대학 학생들이 구상한 원당성사 도시정비계획안

도시정비를 위한 주민참여 주택스튜디오 운영방안도 제안했다. 행정과 전문가집단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존 도시정비사업의 한계를 넘어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 하는 참여형 스튜디오를 통해 도시의 지속성과 운영·관리성을 제고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주민 체감도와 지역에 대한 애착심도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밖에 쿠바와 뉴질랜드 등의 다양한 도시재정비 사례를 소개한 마크 사우스콤 교수는 마지막으로 “도시재정비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요소 중 남기고 추가할 것들을 잘 섞어내는 하이브리드 설계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시대 근무방식 변화
‘자족도시’ 추진에 반영돼야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패널들은 당면한 일산신도시 통합재정비계획에 관련된 핵심 현안으로 자족기능 확보와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방안 등을 뽑았다. 김해련 시의회 건설교통위원장은 “만약 1기 신도시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여기에 자족기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양질의 일자리확보를 위한 정부의 추가대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아울러 “인구증가에 따른 광역교통계획 및 기반시설 확보, 이주대책 등의 대책도 마스터플랜에 세밀하게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광섭 고양도시공사 처장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도시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촉박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며 “무엇보다 최대한 많은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담아내야 할 것 같다. 그 속에서 공공의 역할과 100년 뒤를 내다보는 고양시 미래도시 모델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족도시 조성과 관련된 흥미로운 제안도 나왔다. 손정원 런던대학교 도시계획과 교수는 그동안 오명으로 여겨졌던 고양시의 베드타운이라는 특성이 앞으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려 관심을 끌었다. 손 교수는 “IT기술 발전과 코로나 사태가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방식이 빠르게 확산되어 왔다”며 “만약 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뉴노멀’로 자리잡게 된다면 주택이 많고 생활여건이 좋은 고양시는 새로운 성장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손 교수는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주거공간과 오피스의 경계를 혼합하는 형태로 설계되어야 하며 동시에 근린시설 내에 공유오피스를 설치하는 등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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