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떡볶이의 원조 - 백동민 오빠네 옛날 떡볶이 대표

20대 젊은 패기로 노점상부터 시작
10여 개 매장 모두 직영으로 운영  
함께 해온 직원·고객들이 큰 자산 
20년 이상 기부·봉사의 삶 이어와

백동민 오빠네 옛날 떡볶이 대표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나누는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고사리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기부에 보태달라는 어린이 손님을 볼 때, 장학금을 받은 친구가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했다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을 때 느끼는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동민 오빠네 옛날 떡볶이 대표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나누는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고사리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기부에 보태달라는 어린이 손님을 볼 때, 장학금을 받은 친구가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했다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을 때 느끼는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신문] “20대 때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30년 가까이 된 셈입니다. 운명(運命)이란 ‘자신이 타고난 명(命)을 스스로 움직이는(運) 것’이란 말처럼 떡볶이는 제 삶을 움직이는 생명이 됐습니다. 그동안 제 매장에서 일했던 수천 명의 직원과 수만 명일지 수십만 명일지 모를 손님들과의 인연이 오늘날 저를 있게 해준 힘이자 원동력이죠.” 

백동민 대표를 만나기 위해 일산동구 웨스턴 돔에 있는 오빠네 옛날 떡볶이 본점을 찾았을 때 예전에 허구한 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았던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매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고 첫 번째로 놀랐고,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청년의 모습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백 대표의 나이를 잊은 외모에 다시 또 한 번 놀랐다.

좋은 재료와 음식으로 차별화
“떡볶이를 찾는 고객은 주로 젊은 층이 많잖아요. 신촌 대학가도 그렇고 이곳 웨스턴 돔 역시 젊음의 거리다 보니 청년들이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젊은 부부들과 시간을 함께 함께해오다 보니 나이들 틈을 놓친 거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 역시 다 젊은 친구들이고요.”

백 대표는 호프집을 운영하던 부모님을 도우며 받은 급여와 퇴직금을 모아 1994년에 독립을 결심했다. 자금이 충분치 않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노점상. 젊음이란 더 크고 든든한 자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이 든 분들이 운영하던 주변 노점과는 음식의 질이나 서비스의 차원이 달랐다.

“그 당시엔 요즘은 너무나 흔한 프랜차이즈나 브랜드 매장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신당동, 모래내 시장, 불광시장, 대림시장 등 유명한 재래시장을 돌며 좋은 재료와 음식을 공수해왔어요. 단 몇 초 만에 김밥을 썰어내며 떡볶이와 오뎅 그리고 튀김을 준비해 내놓는 제 손놀림은 손님들에겐 신기한 구경거리기도 했죠.” 

직원과 함께. 백 대표는 오늘날의 오옛떢은 함께해온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직원과 함께. 백 대표는 오늘날의 오옛떢은 함께해온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맛과 정신 유지 위해 직영 고집 
찐득한 쌀 떡볶이가 아니라 어릴 적 학교 앞에서 즐겨 먹던 밀 국물 떡볶이를 개발했고, 신촌에서 최고의 인기메뉴로 떠올랐다. 대학생뿐 아니라 근처 직장인들이 반드시 들르는 참새 방앗간이 되면서 돈을 세기 힘들 정도로 매상을 올렸다. 2002년 월드컵이 있던 해 드디어 자신만의 가게 문을 열었다. 노점을 시작한 지 8년 만의 성취였다. 

“그곳에서 9년을 더 장사하면서 수많은 단골이 생겼고 장사에 날개를 달았죠. 2011년에 문득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신촌 매장을 직원에게 물려준 후 일산으로 왔습니다. 지금도 웨돔점에 오는 고객 중에는 예전에 신촌에서 즐겨 찾았다며 반갑게 알아 봐주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일산 웨스턴 돔에 본점을 둔 오빠네 옛날 떡볶이는 서울, 김포, 양주, 인천 등에 10개 이상의 매장이 있지만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거나, 백 대표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운영하는 매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하지 않은 이유는 오빠네 옛날 떡볶이가 가지고 있는 맛과 정신을 올곧게 유지하고 싶어서라는 것이 백 대표의 설명이다.

오빠네 옛날 떡볶이 웨스턴 돔 본점에 걸려 있는 기부 현황판. 백 대표는 "기부와 봉사는 나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믿고 찾는 손님들과의 약속이라는 마음으로 늘 일에 임한다"고 말했다. 
오빠네 옛날 떡볶이 웨스턴 돔 본점에 걸려 있는 기부 현황판. 백 대표는 "기부와 봉사는 나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믿고 찾는 손님들과의 약속이라는 마음으로 늘 일에 임한다"고 말했다. 

도움 받고 도움 주는 사람 늘기를
“손님들이 들고 날 때마다 직원들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큰 소리로 합창하듯 인사하는 것을 좋게 봐주는 분들이 많더군요. 최고의 품질과 최선의 서비스로 고객을 대하겠다는 저희의 다짐인데, 프랜차이즈로 숫자만 늘리는 것에 집중한다면 그런 맛과 서비스가 똑같이 제공될지 장담 못 하겠더라고요. 그동안 직영 매장을 통해 오빠네 옛날 떡볶이가 손님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처럼 함께 고생해온 직원들에게 더 많은 창업의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그 직원들 덕분에 오늘의 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꽃동네 10만원, 사랑의 열매 50만원, 홀트 분식행사 300만원 상당 음식지원, 홀트 복지타운·요양원 120만원, 홀트학교 50만원, 일산컨벤션고등학교 50만원, 부천정보산업고등학교 60만원, 화정화수고등학교 50만원···. 오빠네 옛날 떡볶이 본점에 걸려있는 1998년 이후 기부현황판의 숫자다. 매월 기부금액과 누적 금액이 자세히 표기돼 있고 매월 업데이트한다. 이 외에도 경상북도 난치병환자 900만원 지원(2013년), 서대문구 독거노인 200만원 지원(2013년), 광명중학교 600만원 지원(2016년), 일산동구청 사랑의 쌀 연 100포 지원 등을 모두 어림잡아 더해봐도 총금액이 무려 6억원이 넘는다. 백동민 대표가 이렇게 쉼 없이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부는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자만에 빠지거나 나태하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부하고 떡볶이 트럭 봉사 나가는 것이 어느 순간부턴가 마치 밥 먹고 물 마시는 것처럼 제 삶의 일상이 돼 버렸더라고요. 고사리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기부에 보태달라고 하는 어린이 손님을 볼 때, 장학금을 받은 친구가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했다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을 때 느끼는 기분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고 믿어요. 그런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면 우리 사회도 따뜻하게 함께 어울리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홀트학교 떡볶이 봉사. 백동민 대표는 2013년부터 매월 홀트학교 분식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홀트학교 떡볶이 봉사. 백동민 대표는 2013년부터 매월 홀트학교 분식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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