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천, 어디로 갈 것인가?’ 토론회
백경오 교수 “계획홍수위 과다 계산” 지적
대책위, 사업 근거 총체적 부실 주장
한강청, 인정도 강행도 어려워 ‘진퇴양난’
시민대책위 → 공동대책위로 확대 출범
[고양신문] 생태계를 위협하는 공릉천 하구 하천정비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시민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릉천훼손저지시민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15일 파주시청 시민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렸다. ‘공릉천,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타이틀로 내건 이날 토론회는 전문가의 발제와 토론·질의응답 등 장장 3시간에 걸친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파주시와 고양시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찾아온 환경활동가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시민사회단체, 지역모임, 교육계, 종교계, 문화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공릉천 지키기 운동에 힘을 보태려는 마음으로 행사장의 좌석을 채웠다.
특히 공릉천 하천정비사업의 주체인 한강유역환경청과 관할 지자체인 파주시청에서도 토론 테이블에 올라 소통의 의지를 보여줬다. 오랜 시간 공릉천의 아름다운 생태와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온 황헌만 생태사진작가의 사진과 영상작품을 감상하며 시작된 이날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출발부터 잘못된 공사, 당장 재검토해야
공릉천 하천정비사업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공론화한 장본인이기도 한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는 ‘한강하구와 기수역 공릉천의 가치와 문제’라는 주제발표에서 다양한 자료와 사진을 보여주며 공릉천 하구의 생태적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어 ▲대다수의 법정 보호종이 누락되는 등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게 작성됐고 ▲경제성 분석 결과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과대 공사를 강행했다고 지적하며 공릉천 하구 하천정비공사에 동의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들을 짚었다.
박 평론가는 “제방 확장과 둑마루 포장, U자형 수로 등 현행 사업을 포기하고, 전문가와 시민들을 아우르는 협의 거버넌스를 만들어 친생태적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계획홍수위 다시 계산하면 무려 2m 낮아져”
‘공릉천 계획홍수위 재고’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백경오 한경대학교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공릉천 하천정비사업의 근거가 되는 계획홍수위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 계산됐다”는 견해를 밝혔다. 계획홍수위는 하천공사 시 제방의 규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역할을 한다.
백 교수는 “2018년 하천설계기준이 개정되며 계획홍수위 결정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었는데, 2020년 한강 하천기본계획은 여전히 과거의 기준으로 계획홍수위를 계산했기 때문에 실제보다 높은 수치를 산출했다”면서 “결국 한강 수위를 기준으로 홍수위를 계산하는 공릉천 하구 역시 부풀려진 계획홍수위가 과도한 제방공사의 빌미가 됐다”고 지적했다. 백경오 교수는 “2020년 하천기본계획에 제시된 한강하구 홍수위(7m)와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자체 계산한 홍수위(5m)를 비교해보면 무려 2m나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거를 바탕으로 ▲한강하구 계획홍수위는 다시 계산돼야 하고 ▲새로운 계산에 의해 더 낮은 값의 계획홍수위가 도출되면 제방고 둑마루폭 등 대부분 하천구조물의 설계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기존 하천정비사업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경오 교수의 발표는 그동안의 문제제기가 생태적 관점에서만 전개됐던 것에 비해 건설공학적 시각에서도 현행 사업이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제라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임현주 파주에서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도 열띤 논의와 제안이 이어졌다. ▲조영권 파주생태교육원장은 “공릉천 습지 보전을 위한 조례 제정”을 제안했고 ▲박평수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은 “공릉천 하구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나아가 람사르습지 등재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릉천 하구에서 수원청개구리를 모니터링해온 남인우 생태활동가는 최근 한강유역환경청이 진행한 서식지 이전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박수택 생태평론가는 치수 목적 제방공사의 불가피성 주장에 대해 “치수의 관점 자체를 바꿔 하천 주변 농경지를 홍수 범람 완충지대로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환경청 공무원 “친환경적 공법 모색 중”
파주시 공무원을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김순현 대외협력관은 “시민 여러분과 전문가들의 간절한 의견을 잘 듣고, 시정 책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참석자는 한강유역환경청 하천계획과 김희정 팀장이었다. 하천정비공사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성토와 요구를 경청하고, 공사 주체로서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에 참석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물관리일원화 정책으로 올해 1월부터 국토부가 담당했던 하천정비 사업을 환경부가 이관받았다는 점을 되짚으며 “개발과 보존이라는 서로 다른 DNA를 가진 조직의 업무 일부가 통합되다보니, 시각 조정과 융합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해당 청의 분위기를 전했다.
구체적으로 김 팀장은 “시민들의 반발을 접하고 즉시 공사를 중단했고, 수로에 덮개를 덮고 생태탈출로를 만드는 등 규정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공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이 해당 부서가 환경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경청한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왜곡 없이 전달하겠다”면서 “개인적으로도 줄곧 환경정책을 담당해온 일선 공무원으로서, 해당 사업에 환경적 마인드를 담아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업 근거 근본적 부정은 인정 못해”
하지만 서 있는 자리가 다른 만큼, 명확한 입장의 한계도 보여줬다. “환경영향평가와 하천설계기준의 문제점이 드러났으니, 공사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참석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김희정 팀장은 “한강유역환경청을 대표해 잘못을 인정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다. 행정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필요한 절차를 거쳐 계획되고 집행된 사업이다. 사업의 근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면, 소통이 진전되기 어렵다”고 못박기도 했다.
공릉천지키기공동대책위원회 출범
이날 토론을 경청한 한 참석자는 “전문가의 의견과 시민들의 의지가 모아지고, 행정 당국도 경청의 자세를 보여줘 아주 유익한 자리였다고 생각한다”면서 “어쨌든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토론회를 마친 후 ‘공릉천지키기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릉천 공대위) 출범식이 이어졌다. 그동안 파주시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던 ‘시민대책위’를 고양시를 비롯한 타 지역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공동대책위’로 확대 재편한 것.
공릉천 공대위는 노영대 생태다큐멘터리 작가, 조영권 파주생태교육원장, 박평수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을 3인 공동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우리는 공릉천을 한 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문을 낭독하며 보다 확장된 차원의 활동을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