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신지혜]
[고양신문] 비극은 10월 29일 밤에 이태원에서 일어났다. 한 번의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부상자 수가 줄어드는 대신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비극이 이어지고, 참사와 연관된 공무원 2명이 생을 달리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뻔히 많은 사람이 모일 줄 알았는데 안전 대책이 없어 참사가 생긴 것도 비극이지만, 참사 후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비극을 빚고 있다. 비극의 아픔을 치유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상처가 겹쳐 덧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사고 수습 기조가 검찰총장으로서의 행보와 닮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참사의 원인으로 ‘제도 미비’를 언급했다. 경찰이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서 안전 예방을 위해 일반 국민들을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의미였다. 흘려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말의 이면은 예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사전엔 법적 책임만 있는 탓에 현재까지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원인을 찾는 일도 조사가 아닌 수사를 택했다. 불법 행위가 명확히 확인된 인사만 책임지게 하겠다는 전형적인 검찰총장식 해법인 셈이다.
경찰 특수본의 수사가 시작되자 관계기관은 입을 닫았다. 국회의원실에서 참사 원인 분석을 위해 관계기관에 자료제출을 요구해도 ‘수사 중이라 제출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오기 일쑤였다. 법적 책임만 묻는 수사는 구조적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찰도 참사 예방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셀프 수사’ 비판이 반복되고 있다.
국정조사를 비롯해 총체적인 참사 원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나 참사 책임에 대한 질문에도 정부는 ‘수사 결과에 따라’라는 답변만 하며 수사 이외 방안은 고려도 않는다. 수사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부담을 느낀 두 사람은 생을 달리했다. 그런데도 ‘수사 결과’를 보겠다던 국가행정 수반은 이 죽음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참사 원인을 검찰 총장식으로 찾겠다는 첫 단추가 잘못돼 빚어진 비극인데도 말이다.
유가족 동의를 구하지 않은 언론 매체가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문제가 됐다. 이후 정부 대응도 검찰총장식이다. 문서 유출 범죄 가능성을 먼저 언급했다. 명단 입수 과정에서의 불법 가능성에 엄정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족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나 피해자들에 대해 모욕 등 범죄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에도 ‘법적 문제’였다. 검찰총장식으로 접근하면서 정부가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유가족이 세상에 드러나면 범죄행위에 노출된다는 식으로만 접근해 유가족의 이름으로 참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여건을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 방식이 아니라 국가 행정 수반으로서 첫 단추를 끼웠다면 어땠을까. 모든 건 내가 책임지겠다고. 안전 행정의 빈틈을 찾기 위해 현장 일선에 있는 분들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달라고. 빈틈을 제대로 메워서 온전히 희생자를 추모하자고. 그랬더라도 공무원 2명이 생을 달리했을까. 그랬다면 참사 진상 규명에 더 가까워졌을까. 검찰총장으로 끼운 참사 진상 규명 첫 단추를 이제 대통령으로서 다시 끼워야 한다. 그 시작은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