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김택근 작가·언론인

[고양신문]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여러 문제가 돌출했음에도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왔던 소통의 문이 6개월 만에 닫혔다. 대통령실은 모든 책임을 MBC에 뒤집어씌웠다. MBC기자가 대통령을 향해 ‘슬리퍼 신고 고성을 질렀다’며 그 무례를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MBC기자의 전용기 탑승 불허와 관련하여 거친 말을 쏟아낼 때부터 예견되었다. 대통령은 “우리 국가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전용기 탑승 배제는)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되레 헌법 수호라고 받아쳤다.  

여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영방송을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일각에선 MBC에 대한 기업의 광고 중단까지 요구했다. 공영방송임을 자처하는 MBC가 아니었다면 이렇듯 집요하게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권력은 맨 먼저 언론을 손보았고, 그 첫 대상은 공영방송이었다. 새 권력은 공영방송을 국영방송으로 손에 쥐고 싶어 했다. 주인이 있되 주인이 없는, 그래서 국민이 주인이 되지 못한 공영방송의 비극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다. 날이 시퍼렇게 선 권력은 편파방송을 한다며 방송 장악에 나섰고, 언론노동자들은 공정보도를 외치며 거세게 맞섰다. 당시 나는 MBC 시청자위원이었다. 시청자 의견서를 통해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했다.   

“MBC가 살아있음이 기쁩니다. 이는 구성원들이 정의에 길을 묻고 양심에 따라 취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조직에서 진실을 살아있게 만드는 MBC의 저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권력을 좇는 무리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다니는 요즘, MBC는 그 권력 위에 의연하게 빛나는 큰 횃불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송사의 시청자위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거듭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2007년 11월)

하지만 간절한 염원은 권력의 야욕 앞에 한줌 바람도 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MBC를 털었다. 간부들이 속속 권력에 투항했다. 결국 정의로운 투쟁은 실패로 끝났고 다시 전파는 오염되었다. 언론자유를 외치던 노동자들은 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이렇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었다. 그래서 공영방송은 진정한 주인을 찾아가야 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전판을 마련해야 했다. 대통령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이런 주장을 폈다.   

“권력의 방송장악은 편파보도를 불러오고, 편파보도는 내부의 의견을 분열시켜 구성원들을 편싸움으로 내몬다. 진보와 보수로 갈려 정권이 교체되면 거의 학살 수준의 물갈이가 이뤄지고 있다. 승자들이 자리를 독식하면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한직으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인재가 넘쳐도 일손이 부족하다. 정권 말기에는 살벌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선 등 개혁에는 손을 놓고 있다.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정론을 외치던 그때를 잊었는지. 마음의 불을 이기지 못한 이용마 기자의 죽음을 잊었는지.” (2021년 10월 30일, 경향신문)

촛불로 탄생한 정권도 방송에서 권력의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했다. 개혁과제를 둘러싸고 난상토론만 거듭했다. 지난날의 투쟁이 진정 눈물겨웠건만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간절함이 사라져버렸다. 방송사는 안일했고 정치권은 권·언 유착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시 권력이 공영방송을 노려보고 있다. 이에 맞서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저항은 거셀 것이다. 정부는 모든 공권력을 동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공영방송을 탄압할 때와 지금의 언론환경은 사뭇 다르다. 권·언 갈등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이 매서워졌고 연대의 그물망이 촘촘해졌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MBC의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다. 언론노동자들이 일어나 연대투쟁을 벌였던 15년 전의 그날들을 기억한다. 다시 MBC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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