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매년 한 번씩 공동체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그룹채팅방에 예배 전에 추모하실 분에 대하여 미리 올려달라는 공지사항이 올라왔습니다. 올 한 해 많은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교인들의 오빠, 남편, 어머니, 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교회에 목사님까지 한 분 한 분 얼굴이 떠오릅니다. 교인들은 대화방에 예배시간에 추모할 명단을 자발적으로 올립니다. 10.29 핼러윈 참사로 돌아가신 158명, SPC 파리바게뜨 평택공장 희생자, 각종 노동 현장에서 재해로 돌아가신 노동자분들을 애도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초록살림부는 인간을 위한 아낌없이 생명을 잃은 동물과 식물들도 추모대상에 올리자고 제안해왔습니다.

올해에도 너무도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애도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애도를 시작해야 하는 이 땅은 장례공화국, 애도공화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는 마치 죽음을 먹고사는 괴물처럼 변해 버린 것일까요?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지구촌에 몰려왔는데도, 전쟁은 계속되고, 군사적 긴장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미일 군사훈련은 러시아, 중국, 북한을 위협하고, 북한은 더욱 많은 미사일 발사로 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현장에 자신의 딸을 데려와 구경시키는 북한 지도자의 모습이나, 미국 대통령이 선물했다는 선글라스를 끼고 방산기업을 찾아 무기로 세계시장을 석권하자고 기원하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낍니다. 도대체 인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에리히 프롬은 1962년 쿠바 위기로 세계대전이 발발할 위험이 절정에 달하자, 전세계 지성인들에게 호소장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프롬은 많은 사람이 삶과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고, 점점 더 파괴적인 것과 죽은 것에 대한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사랑하지 말고 삶을 사랑하자고 호소합니다. 1962년이나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2년이나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닙니다. 지금이 더욱 위험합니다. 그때 세계경제는 호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후위기로 생명 자체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세계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실천해야 할 시기에, 전쟁과 군사충돌을 조장하는 것은 ‘죽음을 사랑하는 것(necrophilia)’입니다.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세상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재난과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고, 미래가 죽음으로 뒤덮이는 전쟁으로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우리가 먼저 ‘삶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프롬은 생명을 경외하는 것, 삶을 사랑하는 것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명명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바이오필리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들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그 모든 행위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더욱더 열렬히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은 죽음과 맞닿아 있기에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미국 드라마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나뭇잎의 길(생명의 길)을 따르는 집시의 수장이 젊은 주인공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폭력에는 평화만한 복수가 없고, 죽음에는 삶만한 복수가 없지.” 우리는 전쟁에 전쟁으로 맞서지 않습니다. 죽임에 죽임으로 복수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기획합니다. 삶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생명을 사랑하는 자의 복수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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