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북해 와덴갯벌 생태 순례기

본지에 생태칼럼을 연재하는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PGA생태연구소장)가 유럽대륙 북해 와덴갯벌 생태 학술여행을 다녀온 탐방기를 현장감 넘치는 글과 사진으로 정리했다. 격주로 3회 연재한다. <편집자 주>

[유럽대륙 북해 와덴해 해안선을 따라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 영토가 이어져 있다. 
[유럽대륙 북해 와덴해 해안선을 따라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 영토가 이어져 있다. 

① 독일과 덴마크의 접경
② 독일의 와덴해와 하구  
③ 네덜란드와 독일의 접경

세계유산 지정된 독일-덴마크-네덜란드 갯벌지역
보전의 비결은 ’하나의 생태계’라는 3국 공동인식 
사람과 동물, 환경이 조화 이루는 현장 둘러보며  
한강하구 접경지대 미래에 대한 생각 깊어지기도 

갯벌 인근 농경지로 날아드는 회색 기러기 [사진=한동욱]
갯벌 인근 농경지로 날아드는 회색 기러기 [사진=한동욱]

[고양신문] 코로나 봉쇄가 해제된 뒤 첫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가 와덴해 학술여행을 제안해 온 것이다. 와덴해는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의 북해 연안에 있는 갯벌지역으로 이미 세계유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많은 이가 다녀와 소소하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늘 궁금했던 것이 독일과 덴마크, 독일과 네덜란드의 접경지역의 모습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갈등은 어떻게 조정되었을까…. 그 속 깊은 내막을 알 길이 없었다.

재단에서 보내온 일정표를 보니 세 나라의 접경지역을 모두 둘러보는 일정이다. 개인적으론 중국 주변의 접경과 동남아시아의 접경생태계를 둘러본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먼발치에서만 보고 왔을 뿐이고 그 지역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는 전무했다. 더구나 세계유산이자 접경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와덴해라니! 잘하면 한강하구 접경생태계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가보자. 가서 직접 보면 알겠지. 그렇게 가방 속에 유럽 새도감 하나 달랑 들고 불쑥 와덴해 순례길에 올랐다.  

흰얼굴기러기 [사진=한동욱]
흰얼굴기러기 [사진=한동욱]

사방천지 새들… 탐조의 기쁨 만끽

일정은 만만치 않았다. 15시간 이상을 날아가서 렌터카를 타고 덴마크에서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까지 해안을 따라 이동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센터를 들러보고 습지를 탐조했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접경을 걸어서 넘어 다니며 사람들의 속내를 들었으니 이보다 더한 학술여행이 어디있으랴. 제한적이나마 글로써 그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여행 초반은 내내 궂은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해외 출장이라 들떠있어서 그런지 그 또한 좋았다. 오히려 안개 속에 도요의 노랫소리, 기러기의 날갯짓이 유난히 가까이 들렸다. 습지 관리자들과 속깊은 이야기, 볼거리 많은 탐방센터, 사방천지 사람보다 많은 새들을 찬찬히 보는 즐거움, 연일 강행군인데도 전혀 힘든 줄을 몰랐다. 
여행 중후반으로 가면서 눈이 시리도록 파란하늘이 드러나면서 탐조활동에도 가속이 붙었다. 한반도에서 볼 수 없거나 희귀한 새들이 지천에 깔려있으니 눈호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진정한 탐조의 기쁨과 희열이 몰려왔다. 

해안가 목초지에서 만난 유럽사슴 [사진=한동욱]
해안가 목초지에서 만난 유럽사슴 [사진=한동욱]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는 방문자센터 

와덴해갯벌과 황해갯벌은 새들의 이동경로상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남쪽과 북쪽을 오가며 들러서 중간 급식을 하는 갯벌, 모여드는 병목(bottle neck) 지형도 비슷하다. 철새이동경로 이름도 EAF(East Atlantic Flayway)와 EAAF(East Asian-Australasian Flyway)로 닮아있다. 서식지가 비슷하다 보니 도요, 물떼새들과 오리, 기러기들도 종이 많이 겹쳐있다. 드넓은 갯벌과 주변의 너른 초원지대, 그 사이에 염습지들, 중간중간 하구와 섬들이 있는 지형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탐방 내내 맘이 편하고 즐거웠다. 

더군다나 가는 곳마다 잘 차려진 밥상처럼 구색이 갖춰진 방문자센터들, 탐방객들 눈높이 맞춰진 안내물들이 있으니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과연 세계유산지역은 다르구나 싶었다. 세 개의 국가에 걸쳐있는 이 넓은 갯벌을 통째로 보전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업적이요 세계에 내놓을만한 성과였다.

와덴해 갯벌은 대륙을 이동하는 철새들의 쉼터다. [사진=한동욱]
와덴해 갯벌은 대륙을 이동하는 철새들의 쉼터다. [사진=한동욱]

인문학적 감수성과 닿아있는 생태 감수성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데, 잘 보전된 접경과 갈라져 위태로운 우리 현실이 자꾸만 겹처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한강하구와 황해는 과연 하나의 생태계, 하나의 람사르습지로 지켜 낼 수 있을까? 점점 수렁으로 들어가서 굳게 잠겨있는 남북생태협력의 철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 남측 한강하구라도 전체를 람사르습지로 지정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해답은 첫 방문지인 덴마크 뢰뫼(Römö)섬 와덴해 세계유산센터 피터 시몬센 책임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국경이 나누어져 있지만 와덴해는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하나의 생태계는 온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선 과학적 모니터링에 기반해서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하지요. 이곳 유럽에서는 세계자연유산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대의에는 모두 동의하니 방법을 찾아가는 건 시간이 걸려도 가능합니다. 핵심 가치를 보전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방법을 논의합니다. 지역주민들과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야 하지요.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서 함께 하는 '커피토크'가 중요한 방법론입니다.”

비록 자연과학과 모니터링에 기반해서 이야기하지만, 관리자들에게서 예술가적 감성이 묻어난다. 역시 생태적 감성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닿아있었다.

[사진=한동욱]
[사진=한동욱]

갯벌과 목초지 잘 보전된 접경지역

뢰뫼섬을 나와서 덴마크와 독일의 접경까지 남쪽으로 습지탐방을 이어갔다. 어느 곳에도 접경의 긴장감은 없었고 두 국가의 접경을 잇는 둑을 표시하는 경계석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과거에 갯벌에 경계를 표시했던 작은 목책이 당시의 국경을 지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새들은 분주히 양국의 국경을 오갔다. 옛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작은 탐방객센터로 리모델링되었고 이정표에는 덴마크와 독일의 마을이 자전거로 얼마나 걸리는지 표시되어 있었다.

관리의 책상이었을 탁자에는 예쁜 흰이마기러기 모형이 관람객을 맞이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 리모델링은 아냐라는 와덴해학교 책임자가 주도했단다. 주민과 방문객이 도란도란 앉아서 얘기할 수 있도록 작고 편안한 센터를 만들었단다. 역시 소통의 달인, 아냐의 안목이 도드라졌다. 옛 국가의 경계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두 나라의 접경 습지는 평화 그 자체였다.   

와덴해 접경지역 주변에는 갯벌과 목초지가 잘 보전되어 있었다. 물새들은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초지에서 쉬거나 모자란 먹이를 보충했다. 푸른 초지에 방목된 양과 소들은 새들과 평화로이 공생했다. 가축과 가금이 밀집 사육되지 않고 건강하게 뛰놀며, 습지는 넓고 물은 넘치니 조류독감과 같은 질병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사람과 동물, 환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건강한 생태계, 이런 개념을 원헬스(One health) 시스템이라 부른다. 

국경을 표시하는 갯벌 펜스 [사진=한동욱]
국경을 표시하는 갯벌 펜스 [사진=한동욱]

서로의 문화와 차이를 존중하는 노력 

와덴해를 관리하는 관리자, 교육자, 연구자들과 매일 토론을 하면서, 내 고민도 점점 구체화되었다. 사실,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이후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한강하구 전체를 람사르습지로 등록하느냐였고 또 하나는 남북이 어떻게 접경습지로 공동 관리할 수 있을까였다. 정치체제가 다르고 군사적 긴장이 있는데 과연 공동 람사르습지 관리가 가능할까. 

독일과 덴마크 두 나라 간의 접경에도 갈등은 있었다고 한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후 접경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독일파와 덴마크파로 나뉘었다고 한다. 이때 그들이 택한 것은 마을 주민투표였고, 투표 결과에 따라 현재의 경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두 국가의 정치형태의 차이도 현존한다. 덴마크는 왕정국가이면서도 지방자치제가 강하여 와덴해에 접한 많은 소단위 자치체가 의사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면, 독일은 연방제로 와덴해에 접한 2개의 주가 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었다. 작은 자치구가 많은 덴마크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국경 지점에 서 있는 이정표 [사진=한동욱]
국경 지점에 서 있는 이정표 [사진=한동욱]

그래서 덴마크 와덴해는 2000년대 들어서야 국립공원 지정 논의가 시작되었고 불과 10여 년 전에서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독일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논의되었던 것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그리고 덴마크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변에 개를 데리고 산책할 수 있게 허용하는 반면 독일은 금지하고 있다 보니, 해마다 휴가철 관광객들이 덴마크 해변으로만 몰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단다. 

이러한 차이에서도 서로의 문화와 체제를 존중하며 서로 합일점을 찾아가는 이들의 열린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의 지자체간 협업, 남북간의 협력에 꼭 참조할 일이다. <2편에 계속> 

혹고니 [사진=한동욱]
혹고니 [사진=한동욱]
[사진=한동욱]
[사진=한동욱]
초지에서 쉬고 있는 혹고니와 양떼들 [사진=한동욱]
초지에서 쉬고 있는 혹고니와 양떼들 [사진=한동욱]
흰이마기러기 모형 [사진=한동욱]
흰이마기러기 모형 [사진=한동욱]
목초지에서 양들과 어울리는 흰얼굴기러기 [사진=한동욱]
목초지에서 양들과 어울리는 흰얼굴기러기 [사진=한동욱]
와덴해 위성사진
와덴해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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