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지난 칼럼에서 사람이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신뢰를 잃을까 봐 거짓말을 하고 칭찬을 받지 못할까 봐 거짓말을 한다. 들통이 나면 몇 배로 마이너스를 당하지만 당장 내 안의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만다.

그래도 거짓말은 생존을 위해 필수이다. 낯선 이는 물론 주변인들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사장에게 아부하고 복종하는 이들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해서 독야청청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가. 나의 고과를 평가하는 상사에게 참말만 하며 응대할 수 있는가. 철저히 가면을 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말이다.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고 생존의 위험을 경험하는 곳, 재판정의 풍경은 어떨까.

고양시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의 폭행·학대 사건 재판이 1년이 되었다. 작년 11월 가해자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등장했다. 수개월간 수사를 받아온 그였으나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CCTV에 찍힌 극소수의 장면, 다른 사회복지사들이 본 것만 인정했다. 피해자들이 의사소통이 힘든 지적장애인인 데다가 CCTV 없는 곳에서 범죄를 저질렀기에 발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디 모든 것을 듣고 본 공익요원들이 법정에서 입만 다물어준다면, 하고 신에게 빌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핵심 증인이었던 이가 재판에 계속 불참을 했다. 그간 뉴스에서는 출소한 이에게 보복당한 변호사, 또는 피해자 소식이 들려왔다. 참말을 하기에는 독사처럼 도사리는 위협에 용기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환경인가. 재판정에서는 가해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와 증인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증인은 거듭 불출석했고, 화가 난 판사는 벌금을 500만원까지 부과했다. 다행히 증인이 출석한 날 말소되었지만 심리전이 대단한 재판이었다. 증인이 출석하기로 한 날, 이제는 가해자가 갑자기 불참을 알려왔다. 변호사들마저 지치도록 파행과 연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피해자 어머니들은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재판정을 오갔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 드디어 모두 출석하여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다. 

선서 낭독문은 ‘양심에 따라’로 시작했다. 법은 사람에게 양심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참말만 해라, 안 그러면 벌을 준다는 법의 위협은 증인의 심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증인은 기대 이상이었다. 2시간 넘는 신문에 시종일관 당당했다. 주저하지 않았고 대답이 분명했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도 한 번뿐이었다. 그의 증언은 확실하다는 것이 묻어났다. 가해자가 발뺌했던 체육관 사건에 대해서는 변호사에게 화내듯이 말하기도 했다.

“체육할 때 이용인들이 잘 안 하려고 해서 잡아당겼을 뿐이라고 하던데 그게 폭행입니까?”

“폭행이죠! 윗몸일으키기 안 한다고 구레나룻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고 멱살을 잡아서 억지로 세운 게 폭행 아닙니까!”

변호인이 움찔할 정도의 답변이었다.

증인은 시종일관 장애인에 대해 말할 때 존중이 배어있었다. 상대 변호인은 증인의 그런 인품이 이해가 안 되었던가 보다. 매번 장애인의 이름을 대며 의사소통은 되더냐, 상태가 어떠냐, 특징을 말해 봐라 하면서 장애인의 부족한 면을 모두에게 알아듣게 말하게 했다. 놀라운 건 신문 말미에 판사 역시 증인이 장애인을 존중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했다는 것이다. 

“증인은 공익요원 하기 전에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좀 있었습니까?”

“아니요. 센터에서 일하면서 그분들과 같이 있으면 편했습니다. 그분들이 순수해서 좋았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봉사활동을 가본 적은 있구요.”

증인의 순결한 용기는 신앙생활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신을 두려워하고 신을 숭배하는 이에게는 사람이 두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종교가 없는 이이게 용기를 줄 힘은 무엇이 있을까? 

두려워 말아라,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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