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푸틴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게 생겼다. 애초 전격전(Blitzkrieg)을 통해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던 푸틴의 계산은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들의 결사적 항전에 부딪히며 빗나갔다. 개전(2월 24일) 10개월째로 접어드는 지금,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이나 독일 등 서방국가들까지 끝없는 소모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도 바닥난 미국의 포탄 재고를 충당하기 위해 10만발의 155밀리 포탄을 미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전쟁은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겨울은 유럽 국가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다. 그동안 러시아의 싼 에너지에 의존해 왔던 독일 같은 나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례없는 에너지 가격 폭등과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모든 관공서의 실내 난방온도는 19도를 넘으면 안되고, 두 배 이상 오른 전기, 가스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서민들은 그저 이 겨울이 너무 춥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은 크고 심각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을 보다 심각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 블랙록(BlackRock) 회장인 래리 핑크는 “푸틴의 탱크에 의해 세계화는 끝났다”고 말한다. ‘세계화’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화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발달된 인터넷 기술 등 통신수단, 교통수단의 발달에 의해 전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현상을 말한다. 과거에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가 대립했다면 이제는 자유무역이란 이름 아래 미국식 시장경제로 세계가 통일된 것이다.
이것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세계는 자유무역을 통해 더욱 부유해지고, 경제발전에 따라 종래 권위주의적이거나 비민주적이었던 나라들에서도 점차 민주주의가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이 광범하게 유포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주도하는 서방세계가 꿈꾸었던 이런 세계화는 당연히 평화를 전제한 것이었다. 싼 노동력을 찾아 움직이는 ‘국제 분업’과 넓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전쟁은 이런 분업과 이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당장 우크라이나에서 전력 케이블 부품을 들여다 쓰던 폭스바겐 자동차는 전쟁으로 부품 조달이 안돼 얼마간 공장 가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점점 심각해지는 중국과 대만 간 갈등도 남의 일이 아니다. 반도체는 대만에, 다른 주요 부품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폭스바겐에게 만약 중국-대만 간 충돌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그건 아예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품, 소재의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세계 1위인 한국, 반도체와 2차전지 등에 필요한 구리, 아연, 알루미늄의 67%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대중 반도체 수입의존도 39.5%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2.2배 내지 6.3배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지역분쟁의 격화는 생존의 문제이다. 미-중 갈등에서 우리가 어느 한 쪽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우리 국익 중심으로 냉정하게 처신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미-러 분쟁, 점점 격화되어 가는 미-중 간 체제경쟁으로 종래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을 기초로 구축되어 왔던 세계화 체제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날 협력을 강조해 오던 서방국가들은 이제 “각자도생”을 외친다. 트럼프의 미국이 그랬고, 브렉시트를 강행한 영국이 그랬다.
그러나 세계는 전례 없는 기후위기와 코비드 19와 같은 전염병, 인플레이션 등,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위기 앞에 공동의 노력과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