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고양신문] 2021년 4월에 시작했던 ‘독일문학완독클럽’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시작으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로 마무리될 듯하다. 그리고 이제 막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책은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다. 오래전 책 제목은 『지와 사랑』이었는데, 굳이 왜 그렇게 의역을 했을까 생각하며 읽어 내려갔다.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나르치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습 교사가 될 정도로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 자기 절제력이 강하고 신앙심도 깊어서 추후 수도원장이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성’과 ‘지성’이다.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소년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도원에 들어오는데, 그는 자유로운 기질을 가졌기에 ‘예술’과 ‘감정’을 상징한다. 아마 이 때문에 예전에는 책 제목을 『지와 사랑』이라고 붙였던 모양이다.

얼핏 이 두 사람, 두 감정, 두 기질이 상반되어 갈등을 일으킬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본능적으로 둘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 나은 방향성을 갖는다. 헤겔의 변증법 정, 반, 합에서 합으로 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어느 한쪽 면만을 지니고 있지 않기에 이러한 양면성을 인정하고 조화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헤세가 추구했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총 20장으로 이루어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골드문트의 여정을 통해 헤세의 가치관을 담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 골드문트는 수도원에서 ‘이성’과 ‘지성’을 따르려고 하지만, 자신의 기질을 파악한 나르치스를 통해 수도원이라는 동굴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혼자 세상을 돌아다니며 연애와 세속의 삶에 빠져든다. 이때 그림과 조각이라는 예술가의 삶도 만끽한다. 그러다 결국 다시 나르치스와 함께 수도원으로 돌아오고,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작품을 남긴 뒤 죽음을 맞이한다. 

줄거리에 몰두하다 보면, ‘예술’과 ‘감정’, ‘사랑’을 대표하는 골드문트가 단독 주인공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헤세는 시작과 끝에 모두 나르치스를 배치했다. ‘이성’을 대표하는 나르치스가 자신과 반대 기질을 가진 골드문트와 우정을 쌓는 걸로 시작해서, 세속의 삶에 빠져 있다가 수도원으로 돌아온 골드문트가 나르치스의 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걸로 마무리된다.

나르치스는 평생을 수도원에 갇혀 ‘지’를 추구하지만, 수도원 밖을 나간 골드문트를 통해 ‘사랑’과 ‘세속’, ‘예술’,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셈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충분히 누려 보고 방황하며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골드문트는 자신이 평생 그리워한 집시 출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르치스에게 이렇게 말한다.“어머니는 자신의 신비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네. 오히려 내가 죽기를 바라시네. 난 기꺼이 죽겠네. 어머니가 그러도록 도와주고 계시니까.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어머니가 계시지도 않는데,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어머니가 없고서야 어떻게 사랑을 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인지한 뒤로 이상적인 여성상, 어머니와도 같은 이브를 완성하려고 했던 골드문트. 비록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죽음으로써 어머니를 접할 수 있기에 그는 피안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나르치스는? 종교와 이성, 지성을 추구하는 나르치스에게 이상향이란 무엇일까?

김민애 출판편집자

친구의 죽음으로 나르치스의 가슴속에는 어떤 것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헤르만 헤세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 당신의 가슴속에서 타올라야 하는 불꽃은 무엇이냐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대립 속에서 스스로 조화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고. 나는 지금 어떤 대립과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곰곰이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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