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신지혜]
한해가 어땠는지 되돌아볼 연말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7개월, 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과거로 사납게 내달렸던 시간이었다고 답하겠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높여온 인권의 기준을 과거로 되돌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자기 입맛대로 편식했다.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고유가, 고금리, 고물가 등 경제위기는 화물노동자에게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물차를 소유해 운송 계약을 맺고 화물을 날랐던 노동자에게 매달 납부해야 하는 화물차 구입 대출 원금과 높아진 이자, 치솟은 기름값은 생존의 위협이었다. 화물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역할 하는 안전운임제 확대가 유일한 제도적 비빌 언덕이었다.
정부의 대답은 엄정대응이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파업에 ‘정치 파업’ 딱지를 붙이고, 최초로 업무개시명령도 내렸다. 화물차주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집단운송거부라 명명하며 파업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더니, 노동자도 아닌 이들에게 강제 노동을 명령한 셈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모든 노동자에게 파업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정부에 긴급 개입 서한을 보냈다. 정부는 ILO 서한에도 변함이 없었고, 갈수록 줄여나가야 할 노동시간은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중계로 선언했다. 기업에 특혜 줄 때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핑계 삼는데,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국제기구의 권고는 가볍게 무시한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멋대로 외치면서 노동권을 과거로 회귀시키는 중이다.
잔인했던 국가폭력을 미화하는 역사 왜곡도 시작했다.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했다. 김 위원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인이 헬기까지 동원해 보호해야 할 국민을 처참하게 살인했다는 진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원을 통해 밝혀진 뒤에도 북한 개입 가능성을 주장한 인물이다. 한국전쟁 전후에 벌어진 군경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을 폭동 때문이라 말하며, 18년 독재의 시작이었던 5.16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 부르는 인물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내디뎠던 무거운 걸음들을 한순간에 뒤로 돌리는 임명을 해놓고 과거와의 화해를 입에 담는다. 국가폭력을 역사에서 지우기 바빴던 과거로 돌아가며 화해와 멀어지는 중이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에도 정부는 모르쇠 했던 과거도 반복되고 있다. 길을 걷다가 국민이 압사당했다. 정부는 수천 명의 국민이 같은 시간 한 장소에 몰릴 것을 알면서도 국민안전을 책임지지도 못했고,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의 생의 끈조차 끊어내고 있다. 참사의 진상규명 첫걸음도 못 떼게 하는 정치가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관한 탓이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축구대표단의 꺾이지 않는 마음에 큰 울림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의 역할은 국민이 절망에 꺾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과거로 사납게 내달리는 국정방향은 현재의 희망을 끊어내고 있다. 연말에 윤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것은 희망 없는 현재를 딛고 설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