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남북관계·외교에서 윤석열 정부가 폭주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1일 정초 군 지휘관들과의 화상통화에서 “군은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보다 사흘 전에는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확실하게 응징하고 보복하라”며 “그게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지시했으며,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서는 “평화를 얻기 위해선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응징, 보복, 전쟁 준비’ 등 살벌한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하고 있다. 이 같은 언어 사용은 군 당국의 과잉 대응과 비효율적 군비 증강 등 부작용과 후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군에서 새떼를 북한 무인기로 오인해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일이 잦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협상 상대에게 외면당한 ‘담대한 구상’
작년 11월 21일 윤석열 정부는 ‘담대한 구상’이라 명명한 대북 정책을 발표했다.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 초기에 일괄타결을 하고, 비핵화 진전에 맞춰 경제·정치·군사 분야에서 동시적, 단계적으로 상응 조치를 한다는 내용이다. 핵심 내용은 비핵화 초기 협상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와 이에 이르는 단계별 비핵화 조치, 분야별 상응 조치 등 로드맵까지 일괄적으로 합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춰 △미북관계 정상화 지원 △평화체제 구축 논의 △남북 군사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추진 등 정치·군사 분야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 정책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간 미국 강경파들이 주장했던 것으로서, 북한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조치를 병렬적으로 동시에 추진한다는 ‘9.19 공동성명’(2005년 6자회담 합의문), ‘싱가포르 합의’(2017년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등 기존 합의를 뒤엎는 내용이다. 비핵화 협상의 문턱을 최대한 높인 접근법으로서 북한이 결코 받아들일 리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다. 북한은 2007년 6자회담 당시 미국의 요구로 먼저 핵시설 리스트를 제출했지만 진위 논란이 발생해 협상이 좌초됐던 경험 때문에 협상 초기에 모든 것을 합의하자는 방식에 선을 긋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 리스트만 먼저 공개하고 협상은 무산될 경우 핵심 시설만 노출돼 추후 공습 목표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윤 정부는 자신의 접근법이 보수진영의 기존 입장인 ‘비핵화 먼저’와 다르다는 점에서 ‘담대한 구상’이라고 한 것 같은데, 협상 상대인 북한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정책을 뭐가 담대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오기만 하면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 북한 민생개선 시범 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은 작년 8월 김여정 담화를 통해 ‘담대한 구상’이 북한의 “국체인 핵과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라며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작년 11월 아세안 회의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라 명명한 외교정책을 발표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인·태 전략은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맞게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각인시킨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중 패권경쟁 와중에 한국이 미국 쪽에 확실하게 서겠다는 공개선언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후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윤 대통령은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등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 강력 반대”를 천명했는데, 이것도 친미-반중의 태도를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남중국해 항행 자유를 강조하고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는 표현은 미국 국무부가 중국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후속 조치로 12월 28일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 최종보고서에서는 ‘포용·신뢰·호혜’의 3대 협력원칙 하에 “중국과는 국제규범과 규칙에 입각하여 상호 존중과 호혜를 기반으로 공동이익을 추구하면서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구현”할 것이라며 중국 배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중국 반응은 싸늘했다.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배타적인 소그룹에 반대하는 것이 지역 국가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으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의 반응도 차가웠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지지 요청에 대해 시 주석은 “북한이 호응해온다면 적극 지지”할 것이며,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가기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시민운동이 윤 정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미국 발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중 간 격심한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위기 속에 세계 각국은 국익을 좇아 각자도생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만은 자유·법치·인권 등 가치외교를 지향한다며 미·일 편에 서서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를 북한 쪽으로 밀어내 한반도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대결 전선이 되게 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추진한 이래 30년 이상 지속돼왔던 탈냉전 외교정책의 틀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를 진영 대결의 전장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최대 국익인 평화·통일·번영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는 데 시민운동의 역할이 절실하다. 무인기 부대를 창설하고 선제타격을 외친다고 북한의 도발이 없어지고 안보환경이 나아질 리 없다. 남북이 군비를 경쟁적으로 증강시키면 ‘안보의 딜레마’만 발생한다. 북미관계 정상화로 북한의 안보위협을 해소해줘 도발 동기를 없애는 게 지혜롭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로 평화의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70년 동안 지속돼온 정전협정 체제는 군사적 긴장의 상시화이고 비정상의 일상화였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시민운동이 힘을 모아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아내자. 우선 국내외 평화단체·종교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종전·평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