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행복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냄새를 좇아가겠지. 그리고 그 실체를 발견하는 순간, 낚아채오겠지. 행복이 달아나지 못하게 머리카락에 매듭을 묶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고.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다.      

진짜 그런 능력을 가진 마녀가 있었다. 그림책 『마녀의 매듭』(리사 비기 글,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에 나오는 마녀는 행복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마녀는 행복을 낚아채 긴 머리카락에 촘촘히 땋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행복은 어김없이 시들어버리고 마녀의 마음엔 그늘이 졌다. 마녀를 견디지 못한 숲속 동물들은 회의를 열어 마녀를 없애기로 한다. 이런저런 꾀를 내지만 작전은 번번이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나선 오소리는 마녀를 없애는 계획 대신 숲속 파티에 와 달라 초대장을 보낸다. 갈등하던 마녀는 파티에 가기 위해 매듭을 풀고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파티에 나타난 마녀에게 오소리가 말한다. “춤추시겠어요?”     

과연 ‘행복’의 실체는 무엇일까? “넌 아무 데도 못 가!” 마녀는 행복을 머리에 매듭지어 묶지만 그 행복은 계속되지 못하고 다음 날이면 시들어버린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냄새는 맡을 수 있지만, 내 것이 되면 시들어버리는 게 무슨 행복일까?      

‘낚아채다’
혹시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행복을 낚아챈 결과는 아닐까? 아무도 못 가져가게 내 머리에 꽁꽁 묶어두어도, 그것은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묶어두면 존재의 이유마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 자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가져서는 안 되는 것. 모두의 것이 되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      

‘함께해야 행복하다’는 말은 오래된 명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논조의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 내 삶에 적용될 때는 다른 얼굴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이익이 더 중요하고, 내 식구가 근무하는 직장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장애인들이 차별받는 것은 안 되지만 내가 다니는 길이 누군가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건 야박하다 생각하지만 내 소유 부동산이 있는 지역이 개발되어 시세차익을 얻었으면 한다. 투발루가 물에 잠기는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 아이가 즐길 스키장이 만들어지고 내가 놀 골프장은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낚아챈 행복’ 
아니 정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낚아챌 생각은 없었다. 그저 행복의 냄새를 좇았을 뿐이고, 느껴지는 행복을 내 머리에 매듭지었을 뿐이다. 그렇게 묶인 행복이 다음날 시들어버리는 까닭에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그것이 낚아챈 행복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마녀에게 손을 내민 건 오소리이다. 오소리는 마녀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대신 초대장을 보낸다. 거기 모인 숲속 동물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마녀가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박미숙 일산도서관 관장
박미숙 일산도서관 관장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초대장을 받는다. 오래전에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를 쓴 전우익 선생님에게 “함께 살자”는 초대장을 받았고, 얼마 전에는 진주 김장하 선생님이 ‘저울처럼 평등하다’라는 말인 ‘형평’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초대장을 받았다. 뿐인가? 동네 작은 공동체를 함께 회복하자는 초대장도 받고, 생명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을 혐오하지도 차별하지도 말자는 초대장을 받는다. 

모르는 사이 낚아챈 행복들이 내 머리에 매듭지어 시들어있지는 않은지 거울을 한번 보자.  매듭을 풀고 머리를 감을지 말지는 오롯이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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