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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향'과 '고양'이 하나됐죠

고향이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니다. 고향은 시정에서 묻은 생활의 때를 씻어주고, 거짓과 위선으로 매몰된 진실의 얼굴을 찾아주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기다운 빛깔을 찾아주기 위하여 마르지 않는 지하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면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고향은 공해에 찌들고, 자동차 소리에 귀가 먹고, 숱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루에 세 번씩 욕설을 퍼부으면서 살아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김규동의 '하늘과 태양만이 남아 있는 도시'의 표현을 빌리면, ‘간판이 커서 슬픈 거리’나 ‘빛깔이 짙어서 서글픈 도시’는 고향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노천명은 아예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이 진짜 고향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이은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상의 모든 땅은 고향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남쪽 바다’만이 고향이라고 단언한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니 가고파라 가고파.”

요즘 우리 주위에는 그들이 평생 발을 딛고 살아온 조국 강토를 버리고 바다 건너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 혹은 무조건 도시를 떠나는 낙향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떠남은 그 자체로 새로운 고향 찾기가 된다. 떠남이 바로 웰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고향관은 약간 다르다.

나는 여우가 우는 산골에서 살 수 없다. 신문, 냉장고, 텔레비전도 없는 곳에서 어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간판이 커서 슬픈 대도시에서도 살 수 없다. 우선 시꺼먼 가래침을 매일 뱉으면서 살 자신이 없다.

내가 진정 원하는 고향은 시골이면서 도시적이며, 도시면서 시골티가 나야 한다. 땅이지만 물을 만날 수 있고, 적당한 도시이면서도 전원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결국 고양을 나의 마지막 고향으로 정했다. 왜?

고양에는 바다가 없다. 그러나 고양은 호수의 도시며, 매년 꽃 박람회가 열리는 꽃의 도시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인조 호수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일산(一山)에는 큰 산이 없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태산이 높다 하되…”의 태산이 별로 높지 않은 경우와 같다. 그러나 태산은 넓은 평야 한 복판에 있기 때문에 대단히 높게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양에는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없어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산 냄새를 맛볼 수 있는 고봉산도 있고 정발산도 있다.

고양에는 과거와 현재, 구일산과 신일산이 공존하고 있다. 고양은 역사적이면서 미래적이고, 서민적이면서 도시적이다.

특히 나는 고양 사람들의 살가운 인정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큰 빛의 고장인 고양(高陽)이야말로 모든 사람의 고향(故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황필호/강남대 신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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