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신지혜]
[고양신문] 2년여 전부터 동거 중이다. 동거를 선택한 이유는 실리 때문이었다. 서울의 전세보증금은 너무 비쌌고, 대출이자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때마침 서울에 원가족이 살지만 자기방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인 지인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자기 생활비만 벌고 있는 대학생인 그도 재정적인 문제로 소원을 못 이루는 중이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보증금 없이 소정의 월세만 받는 조건으로 방 한 칸을 내주기로 했다.
이사할 때, 같은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은 누구와 사느냐는 물었다. 구구절절 설명은 하고 싶지 않아서 ‘동생과 산다’ 답했더니, 빌라 거주민들은 동거인을 내 친동생으로 여겼다. 나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과 사는 가구를 ‘비친족가구’라 부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엔 비친족가구원이 100만 명을 넘었다. 고양시 인구와 엇비슷한 규모의 사람들이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사람과 살고 있다. 굳이 성애적 관계를 맺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신뢰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건 장점이 꽤 많다. 혼자 사는 것보다 경제적 부담을 더는 것은 기본이고, 종종 아플 땐 서로를 돌볼 수 있다. 불가피한 외박을 해야 할 때 외로움 많이 타는 내 고양이를 대신 돌봐주기도 한다.
내 동거인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면 또 다른 동거인을 구할 것 같다. 나이 들수록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70대 두 여성의 우정을 담은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릎이 아파 변기 위에서 혼자 일어나지 못할 때나 허리를 삐끗해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 등 서로를 돌보며 곤경에서 구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는 큰 위안이었다.
나만의 방은 필요해도, 혼자 살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동거하는 두 사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한국에 없다. 법적 인정은 긴급 의료행위를 동의하거나 주거 등 정책적 혜택을 받을 때도 필요한데, 친족 관계가 아닌 두 사람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관계는 결혼 외에 없다. 사랑해서 같이 살지만 결혼은 원치 않거나 성애적 관계가 아닌 신뢰하는 사람과 사는 사람은 제도적 혜택을 받는 가족으로 묶일 수 없는 것이다.
동거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생활동반자’로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오랜만에 ‘생활동반자제도’가 언급됐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인구위기 극복 방안으로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제도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혼외 관계에서의 자녀 출산 비율이 꽤 높지만, 우리나라는 1% 남짓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다양한 가족 형태에서의 출산과 양육이 차별 사유가 되지 않아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인구위기를 벗어날 현실적 해법으로 제시된 셈이다.
결혼은 싫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기꺼이 택할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생활동반자제도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원하는 형태의 가족을 꾸리며 살고 싶다는 소망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되지 않길 바란다. 생활동반자제도는 시민 사이의 연결을 더 평등하게 이끄는 특별한 계약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