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고양신문] 우리나라 지명에 볕 양(陽)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뒤로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있는 배산임수 지형을 가진 지역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지명으로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이 있다. 한양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함양, 양양, 고양 등 볕 양자를 사용하는 많은 지역이 있다. 이런 지명을 갖고 있는 지역은 뒤로는 산, 앞으로는 강, 사람들이 정주하는 곳에는 넓은 들판이 있어 살기 좋은 명당이다.

100만명 이상이 모여 살아가는 고양은 뒤로는 북한산, 앞으로는 한강, 가운데는 넓은 일산 들판을 가진 살기 좋은 곳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생물 또한 살아가기 좋은 지역이다. 그래서 고양에는 북한산 국립공원과 한강 변 장항동 국가 습지보호지역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항 습지는 한강 하구에 위치하여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조간대 생태계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보호구역인 람사르 습지로도 지정되었다. 

보호지역은 생물다양성과 경관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 지정된 지역이다. 국가나 국제적으로 해당 지역의 개발을 억제하고 보전하기 위한 약속의 땅이다. 보호지역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수천년, 수만년 시간의 퇴적이 이루어지고 자연환경이 우수한 곳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다. 보호지역은 우리나라와 같이 개발이 많이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야생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보금자리이다. 이런 곳을 생태학에서는 성소(sanctuary)라고 부른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바탕으로 지정된 보호지역들이 최근 수난을 겪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흑산공항 조성 등이 추진되면서 보호지역의 일부가 해제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시설 설치를 두고 보전과 개발 사이에서 심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최근 만의 일도 아니다. 1986년 동계아시안 게임을 위해 스키장을 조성했던 덕유산 국립공원이나 2018년 동계 올림픽을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해제되었던 가리왕산 등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보호지역 개발사례들이다. 

이런 개발사업들은 친환경적인 개발을 통해 자연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조성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친환경적인 개발이 아니라 회복할 수 없는 치유 불능의 상태가 되어있다. 덕유산 스키장에는 수백년된 주목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스키장 건설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던 주목들은 거의 대부분 고사하고 말았다. 가리왕산의 경우도 비슷한 결과를 겪고 있다. 아름드리 전나무와 왕사스레나무들이 사라졌다. 수천년 보전되어온 자연의 가치가 순식간에 훼손되었다. 그런데 무리한 개발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당초 의도한 친환경적 개발은 실패했으니, 기왕 훼손된 것, 더 적극적인 개발을 통해 지역발전에 도움을 주도록 하자고 하는 억지스러운 주장이 계속되는 경우도 많다.

보호지역의 지정과 관리는 국가가 하는 약속이다. 보호지역의 지정은 그래서 매우 신중하다. 보호지역 지정으로 인해 피해가 갈 수 있는 주민들에 대한 보상과 생태관광 등 다양한 지원대책이 함께 제시된다. 그 대신 보호지역은 세세연년 보전되어야 한다. 보호지역이 가지는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을 더 발한다. 그런데 당장의 이익을 위해 개발을 하게 되면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작년 12월 2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전 세계는 전 지구적인 생물다양성 전략계획인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 워크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는 2030년까지 육상 및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지역으로 보전·관리하고, 훼손된 육지 및 해양생태계를 최소 30%를 복원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는 생물다양성 협약 가입국이므로 이 원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육상면적의 약 17%만이 보호지역이다. 앞으로 30%의 보호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현재 확보된 보호지역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보호지역을 훼손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보호지역은 내일을 위한 오래된 미래이다.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보호지역은 잘 지켜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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