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건강 살리는 월요시민강좌-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고양신문] 토종씨앗 한 알에 담긴 의미에 남달리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현재 전남 곡성에서 토종씨앗으로 자연농을 하며 ‘토종씨앗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변현단 선생이다. 변현단 선생은 진보정치 활동을 하다 생태·순환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의식주를 손수 해결하는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귀농을 결정했다. 귀농 후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깨달고 2008년부터 ‘토종씨드림’ 대표로 전국을 누비며 토종씨앗을 지키고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토종씨드림’은 전 국민의 밥상에 현지보전 된 토종씨앗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변 선생은 한 때 경기도 시흥에서 자활공동체 ‘연두농장’을 운영하며 ‘자연스러운 농사’를 실험하기도 했다. 변 선생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농사’는 산업화된 재배방식이 아니다. 자연에 최대한 순응하며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는 농사다. 변 선생은 책도 여러 권 썼는데, 이 중에서 『연두, 도시를 경작하다 사람을 경작하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소박한 미래』 등은 모두 문체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됐다. 

이러한 변현단 선생이 지난 20일 전남 곡성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 강의 장소인 주엽동 사과나무치과병원을 찾았다. 고양신문·건강넷·사과나무의료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생명과 건강을 살리는 월요시민강좌’에 참석해 강의를 펼치기 위해서였다. 변 선생은 “종자를 수출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이 땅의 농민이 우리의 종자를 이용하고 지키며 밥상에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날 변현단 선생이 강의한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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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그동안 토종씨앗을 찾아왔다. 17년 동안 전국 40여 곳에서 모은 토종씨앗 종이 만여 종이다. 대부분 시골 할머니들에게 얻은 씨앗들이다. 시골 할머니들은 옛날의 맛과 향을 못 잊어서, 당신이 먹기 위해 토종 작물을 재배하는 어르신들이다. 할머니에게서 얻은 토종씨앗을 밭에 심고, 또한 토종 씨앗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나에게 종종 ‘왜 하필 토종씨앗이냐’고 묻곤 하는데, 오늘 강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불임종자
여러분들이 구매한 농산품의 70% 이상이 불임 종자라고 봐도 된다. 처음 구매한 씨앗(F1)을 심었을 때 배추나 무를 재배하고 씨앗을 챙길 수 있다. 다시 이 씨앗(F2)들을 심으면 배추나 무가 어느 정도 자란다. 그렇지만 첫 번째 씨앗만큼 생장이 좋지 못하다. F1을 심었을 때 병충해도 강하고 열매도 잘 맺던 것이 F2(F1에서 채종한 다음세대 종자)에 가서는 병충해도 상당하고 열매도 제대로 맺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단호박의 경우, 씨앗에서 생장한 단호박이 동그란 형태가 아니라 쭈글쭈글해진 경우가 허다했다.

이처럼 기업에서 판매하는 씨앗들은 농민들이 매년 씨앗을 사서 쓰게끔 개량된 불임종자다. 결국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매년 씨앗을 다시 구매해야 한다. 농민들이 구매하는 씨앗은 토종종자가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유전자 변형 종자가 대부분이다. 소비자가 마트에 있는 단호박, 파프리카, 양배추 등을 사갈 때 로열티는 고스란히 외국의 종자 기업에게로 돌아간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선택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균질화된 농산품을 구매할 뿐이다. 실질적으로 ‘식량권’과 ‘종자권’은 종자회사가 거머쥐고 있다.  

씨앗이 사라지고 있다
20세기 산업문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씨앗이 사라져버렸다. 농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규모의 농지에서 한 가지 작물만 생산하게 됐다. 농산품을 균질화 하고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과제에 몰두한 나머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많은 품종은 없어져버렸다. 생산성을 최고로 삼는 근대적 농법은 다양한 씨앗의 절멸을 더욱 촉진시켰다. 자연의 방식을 모방하거나 활용하던 농법에 길들여졌던 씨앗은 이제 농약과 비료라는 근대의 화학 농자재를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졌다. 씨앗은 점점 자연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먹기 위한 작물이 아니라,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물을 생산하다 보니 다양한 종이 사라졌다. 씨앗은 더 이상 문화유산이 아닌 사고파는 하나의 상품으로만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절멸될 위기에 처한 씨앗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씨앗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화학 농자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자연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다른 여러 생명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시도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씨앗에 대한 권리를 씨앗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에게만 맡기지 않고 지구의 대지에 뿌리를 내린 씨앗과 직접 대면하는 모든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웃에서 이웃으로, 현세대에서 미래세대에게로 씨앗이 널리 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산성과 균질성이란 가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씨앗을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 다양성의 꽃이 활짝 피도록 씨앗을 심어야 한다.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토종씨앗의 가치, 다양성과 지속성 
토종씨앗에서 나온 작물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가령 토종 무의 경우, 무도 먹고 시래기도 먹고 김치도 담글 수도 있었다. 현재 종자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시래기만을 위한 무 종자를 따로 만들거나 무만 먹고 시래기는 버리는 종자를 따로 만들어 판매한다. 

무엇보다 토종씨앗은 생물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이 일반씨앗과 가장 다른 측면이다. 가령 콩을 하나 심으면 약 200개의 콩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검은색 콩을 심어도 그 안에 검정콩만 있는 게 아니라, 파란 콩도 있고 밤색 콩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색의 콩이 나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콩은 흰콩, 검은콩, 완두콩 등 몇 종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토종 씨앗을 연구하니 콩만 해도 수천 종이 있다. 또 같은 콩을 심어도 토양이나 기후에 따라서 색과 모양이 바뀐다. 가뭄이 닥쳐도 작물의 종류가 다양하면 어떤 건 망해도 어떤 건 살아남을 수 있다. 결국 기후위기가 닥쳐와도 살아남게 하는 건 다양성을 가진 토종씨앗이다. 꼭 우리 세대가 아니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이 다양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토종 씨앗이 가지는 ‘다양성’은 우주에서 잉태된 생명의 ‘지속성’과 꽉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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