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학』에 詩 두 편 실어
행주 토박이 출신으로
유학시절 바그너의 조카와도 인연

홍익정신 속 '영성'을 노래하는 이기영 교수
홍익정신 속 '영성'을 노래하는 이기영 교수

[고양신문] “시로 일어나고, 예로 바로 서고, 악으로써 이룬다.” 논어의 한 구절로, 공자가 생전 애창했던 가르침이다. 해당 구절은 군자학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형식이 바로 ‘예악’(禮樂)이라고 말한다. 이 문구를 실천으로 옮기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행주동에서 천년초를 줄곧 연구해온 호서대 명예교수, 이기영(66세) 시인이다. 


이기영 시인은 월간 『한국시학』 봄호에 시 ‘꽃이 피다니’와 ‘오이지와 모시옷’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이 시인은 “가톨릭 문인회 특강으로 연을 맺은 허형만(시인) 회장의 추천으로 수상하게 됐다”라며 “마음속 품고 있던 시인데, 많은 분께서 시 속의 생명력과 감정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수상한 ‘꽃이 피다니’에는 ‘영성’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는 현대인들이 물질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고, 더 나아가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품기만 해도 느낄 수 있는 힘이 바로 영성입니다.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거쳐 이젠 경제-신냉전으로 쑥대밭이 된 한국에서 소멸 중인 가치이기도 하죠. 이번 작품 ‘꽃이 피다니’는 연작시 ‘행주의 찔레꽃’으로 이어집니다. 찔레꽃은 가시가 세고 자르려고 할수록 질기게 버티기에 꺾이지 않는 굳센 가치를 상징합니다. 넘쳐나는 물질 속 소멸 중인 ‘영성’을 찔레꽃처럼 질기게 지켜내려온 한민족의 사상, 즉 홍익정신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이 시인의 ‘영성’에 대한 탐구는 독일 유학 시절 만난 86세의 헤르만 바그너로부터 시작됐다. 베를린필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실내악단 지휘자였던 그는 독일 음악명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조카로, 갓 유학 온 이 시인 부부를 1년간이나 집세도 안 받고 함께 살게 해 주었다. 매일 채식을 하고, 기공체조를 하던 바그너 할아버지로부터 이 시인은 동양철학을 배웠다. 


“바그너 할아버지께서는 제국주의로 발전한 현대 서구 물질문명이 많은 자연친화적 소수 문명을 파괴해 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바그너 할아버지는 제게 파괴적인 서구 물질론적 기계문명의 대안으로 동양의 자연철학이 담긴 노자와 장자를 가르쳐주셨지요. 당시 저는 동양인이면서도 서양철학에는 일찍이 눈을 떴으나 정작 동양 자연철학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작한 환경·자연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현재의 ‘영성’을 담은 시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은 독일 민족의 우월함과 반유대주의를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이 2차 대전기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에 큰 영감을 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헤르만 바그너는 숙부의 음악이 어떻게 유럽에 악영향을 미쳤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산증인인 셈이다. 그가 강조한 예술의 힘은 현재의 이 시인에게 깊은 고민을 남겼다.


그는 행주 토박이 출신이다. 한강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지역과 밀도 높은 인연을 맺고 있다. 노래를 통해 행주를 ‘홍익정신’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시인은 “시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정체성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제 시가 가진 힘을 바탕으로 ‘행주치마’로 알려진 항일정신 ‘행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제가 걸어 나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을 상상하는 60세가 넘은 그의 모습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행주산성을 뛰놀았을 어릴 적 그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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