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신지혜]

[고양신문]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 작가의 전작 <미스터 션샤인>을 무척 좋아한다. ‘글로리’는 <미스터 션샤인>에도 등장한다. 주인공 애신이 처음으로 배운 영어 단어 중 하나로 말이다. 애신이 영단어 ‘글로리’를 알게 된 것은 빈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애신이 비슷한 시기 알게 된 영단어인 ‘건’과 ‘새드 엔딩’이 ‘글로리’와 만나면, 애신에게 ‘글로리’는 빈관 이름 그 이상이 된다. 애신은 일본이 조선의 주권을 침탈하기 시작하던 때, 조선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불꽃처럼 살고자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애신은 완전하게 주권 침탈당하는 그 날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해 일본의 조선 주권 침탈에 협조하던 친일파를 한 명이라도 더 처단하려 한다. 애신의 ‘글로리’는 조선을 침탈하려는 일본의 폭력으로부터 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불꽃으로 뛰어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끔찍한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문동은이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문동은의 복수를 돕는 조력자도 생기는데, 왜 복수를 돕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걸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영광과 명예밖에 없다고. 

문동은의 복수는 자신의 ‘글로리’를 찾기 위함인데, 복수의 방식은 각 가해자가 폭력을 행한 방식을 연상시킨다. 복수로 자신의 존엄을 해쳤던 폭력의 방식을 되갚아주는 셈이다. <더 글로리>와 그 이전의 <미스터 션샤인>의 겹쳐진 ‘글로리’는 자신의 혹은 누군가의 존엄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한 여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과정은 잠시 불타오르고 사그라드는 불꽃으로 뛰어들어야 할 만큼 절실한데, 지금의 정치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것일까. 

대통령은 일본 제국주의가 행한 강제동원의 역사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퇴색시키기 바쁘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강제동원한 전범기업의 배상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제3자 변제’ 방식을 거부하는데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나쳐야 할 과거로만 치부할 뿐이다.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피해자가 ‘글로리’를 찾는 방법을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 막아서며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은 다른 경제적 조처에도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 자국민이 타국에게 입은 피해 회복을 자국의 대통령이 막아서고 있으니 피해 입힌 타국이 더욱 떵떵거리며 과거사 지우기에 나설 것은 뻔했는데,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며 강행한 한일외교에 어떤 ‘글로리’를 찾아볼 수 있을까.       

지금의 한일외교를 바라보자면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가해자 편에 선 학교 때문에 복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서사가 힘을 얻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결국, 국가권력은 믿지 말고, 개인이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

강제동원 피해자는 ‘제3자 변제’를 거부하고, 한국 정부와 싸우는 길을 택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글로리’를 얻기 위해 불꽃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고 정부가 강요한 셈이다. 불꽃으로 뛰어드는 절실함을 공감부터 해야 할 때, 정부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조차 무너뜨리고 있다. 국민의 존엄을 스스로 해치는 정부는 결국 수많은 불꽃만 낳을 뿐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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