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포커스 - 치매와 혼동 쉬운 노인성 뇌전증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만성질환
기억력·인지저하 치매로 혼동 쉬워
뇌전증·뇌졸중·치매 서로에게 영향
노인성 뇌전증 약물치료 반응 좋아
[고양신문] 3월 26일은 국제적으로 ‘퍼플데이(Purple Day: 뇌전증 인식개선의 날)’로 불린다.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사회인식 개선을 위해 제정됐는데, 2008년 뇌전증을 앓던 캐나다의 한 소녀가 뇌전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뇌전증 환우들의 유대 강화를 위해 보라색 옷을 입자고 제안하면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간질이라고도 불렸던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에 갑작스러운 이상 흥분 상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전기적 현상이 그 주위 또는 전체 뇌로 파급돼 발작 증세가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뇌전증은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흔한 만성 뇌 질환으로,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한다. 어린 시절의 뇌전증은 대개 선천적인 요인이나 출산 시 발생하는 뇌 손상, 중추신경계 감염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성 뇌전증은 뇌혈관질환이나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 뇌종양 등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성 뇌전증 발생률 급격히 증가
뇌전증 환자의 나이별 분포는 U자 곡선 형태를 띤다. 뇌전증 발병률은 영유아기에 가장 높고, 청·장년기에는 낮아졌다가 노년기에 다시 높아진다. 특히 70세 이상의 노인성 뇌전증의 발생률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노인성 뇌전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뇌졸중으로, 전체 환자의 약 40~50%를 차지한다. 이어 뇌종양이나 두부외상 등의 다양한 뇌 병변이 약 20%,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이 약 10%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약 20~30% 정도다.
노인성 뇌전증의 특징은 몸을 심하게 떠는 경련 발작의 빈도는 적고, 비 경련 발작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비 경련 발작은 지속적 기억력 상실, 인지기능 저하, 혼미한 의식상태 등 치매와 비슷한 증상들이 주로 나타난다. 따라서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쉽게 눈치채지 못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명지병원 이병인뇌전증센터장인 이병인 교수(신경과)는 “소아와 성인에서 발생하는 뇌전증은 형태가 달라 각각의 특성에 적합한 프로토콜을 적용해야 한다. 특히 노인 뇌전증의 경우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거나, 노화로 인한 기억력 저하로 간과할 수 있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한다거나 평소와 다른 이상한 행동, 혼미한 의식상태가 반복된다면 뇌전증일 가능성이 크므로 꼭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졸중·치매 환자, 뇌전증 발생위험 10배 높아
뇌전증은 뇌졸중, 치매와 함께 3대 신경계 질환으로 불리는데, 세 질환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다른 질환의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졸중이나 치매 환자의 경우 뇌전증 발생위험이 정상인보다 10배 이상 높으며, 반대로 노인성 뇌전증 환자는 뇌졸중이나 치매 발생 확률이 3배 이상 증가한다. 또 노인성 뇌전증 환자들의 40~50%에서 뚜렷한 원인 없이 경도인지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된 만큼 정확한 검사를 통해 향후 뇌졸중 발생 가능성이나 인지기능의 이상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이병인 교수는 “뇌전증, 뇌졸중, 치매는 가장 흔한 노인성 신경계 질환이면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며 “뇌혈관질환의 원인이 되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관리와 경각심을 갖고 몸의 위험 신호를 파악해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로도 효과적, 난치성일 경우엔 수술
뇌전증을 진단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뇌파검사로, 뇌 전압을 측정해 뇌파를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비디오 뇌파검사도 시행한다. 또 뇌 MRI 검사를 통해 발작을 일으키는 구조적인 뇌 병변을 찾아낸다. 하지만 뇌전증은 검사 결과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려우므로 과거 병력이나 주변인의 증상관찰 등 다각적으로 고려해 진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뇌전증 치료의 기본은 약물치료다. 뇌전증은 적절한 치료와 예방으로 증상을 개선하고 진행 속도를 늦추면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안전하고 우수한 약제들이 많이 개발됐고, 특히 노인성 뇌전증의 경우는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이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술적 치료는 약물로 조절이 안 되는 일부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에게 시행된다. 다양한 검사를 통해 뇌전증을 일으키는 병소 위치가 확실하고, 뇌 기능에 이상이 초래되지 않을 때 시행한다. 수술이 불가하다면 미주신경자극술이나 뇌 심부자극술 같은 시술을 사용한다.
이 교수는 “뇌전증은 오래되고 흔한 질환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아직 낮은 편”이라며 “아직도 과거 ‘간질’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한데,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습득해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뇌전증을 제대로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명지병원은 이달 초 뇌전증 권위자인 이병인 교수의 이름을 내건 ‘이병인뇌전증센터’의 문을 열고 소아·성인·응급·재활까지 통합적인 뇌전증 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