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전 SBS 도쿄특파원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전 SBS 도쿄특파원

[고양신문] ‘한국사람들은 툭하면 일본 더러 사죄하라 사죄하라 요구하는데, 진절머리 난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있을 건가? 한국이 지금 이만큼 살게 된 게 다 누구 덕분인가? 일본이 과거에 한국을 식민지로 편입해서 철도 놓고 도로 닦고 공장 세우고 학교 병원 짓고 엄청나게 투자했다. 한국은 근대화와 경제 발전의 기틀을 이뤄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 지배를 받게 된 건 행운이다. 러시아나 중국 지배를 받았다면 북한 꼴이 됐을 것이다. 은혜도 모르고 사죄하라 소리치는 한국인들, 어리석고 흉하다, 미니쿠이 칸코쿠진(醜い韓国人 ; 추한 한국인)!’

‘추한 한국인(醜い韓国人)’ 이란 제목으로 일본에서 나온 책은 선풍을 일으켰다. 일본 우익의 주장이나 다름없는데도 관심을 끈 건 ‘박태혁(朴泰赫)’이란 필명의 저자가 ‘서울대 출신, 언론인 경력의 평론가로 한국의 엘리트 지식인이 용감하게 한일 역사 인식의 금기(禁忌)를 깨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역사 반성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펴낸 대형 출판사 고분샤(光文社)는 그렇게 내세웠다. 원고를 읽고 감탄했다며 책에 후기를 달고 침이 마르도록 소위 박태혁의 용기를 칭찬한 인물은 외교평론가 가세 히데아키(加瀨英明)라는 일본의 우파 성향 저명인사였다.

'일본은 침략국이 아니다' 집회에서 연설하는 가세 히데아키(1993년, SBS 취재영상)
'일본은 침략국이 아니다' 집회에서 연설하는 가세 히데아키(1993년, SBS 취재영상)

30년 전, 1993년 3월에 국내 신문들이 도쿄 특파원 발로 보도해 ‘추한 한국인’ 논란이 일었다. 일본 상업주의 출판사와 우익이 가공의 한국인 저자를 내세워 지론을 주장하고 돈도 벌려 했을 것이란 억측만 남기고 논란은 가라앉았다. 국내 언론이 책 소개 글 정도만 훑어보고 흥분할 게 아니었다. 직접 읽어보니 저널리스트 출신 한국의 지식인이 썼다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점투성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저자임을 내세우기 위해 한국의 민속, 전통문화, 역사의 기초 상식적인 내용을 곁들이며 일본 극우의 주장을 곳곳에 끼워 넣었다.

도개걸윷모의 윷놀이는 앞뒤 평평한 윷가락이 다섯 개? 세종대왕이 1443년에 한글을 만들기 시작해서 3년만인 1446년에 완성? 한국의 청자 백자는 식기 위주로 문화적인 품격을 드러내는 꽃병이 없다? 인육 먹는 습관의 이조(李朝) 사회, 한국인의 한심스런 열등감, 일본은 문란했던 한국사회를 바로 잡았다, 한국은 일본에게 겸허히 배워야 한다… 후기를 썼다는 가세 히데아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울방송 특파원 말고는 전화로라도 묻고 확인해 온 한국 언론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가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일본의 목을 겨누는 단도와 같은 존재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한반도는 힘의 진공상태였다, 청이나 러시아 손에 들어가면 일본이 위험하다, 일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를 병합했을 뿐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하게 된 건 미, 영이 덫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자위를 위한 전쟁이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낸 덕분에 필리핀, 월남을 비롯해 동남아 각국이 독립하게 된 것이다, 원자폭탄을 맞아 전쟁에서 졌지만 대동아의 공영을 위한 투쟁이었다, 일본이 침략국이었다고 미래세대에게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가세는 1936년생으로 일본이 패전한 해에 9살이었다. 그의 아버지 가세 도시카즈(加瀨俊一)는 제국주의 일본의 외무성 관료로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해군 전함 미주리 호 갑판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시게미츠 마모루 일본 외상을 시립한 인물이다. 일본에겐 자업자득인 침략 역사의 결말 현장에서 절치부심, 와신상담을 다짐했을 터다. 훗날 일본의 초대 유엔대사가 되고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극우단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현, 일본회의)’ 의장을 지냈다.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책임을 안 지려는 극우 이념 대물림이 ‘추한 한국인’ 주장의 온상이다.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 (1945년9월2일, 미해군 미주리호), 오른쪽 서 있는 인물이 가세 도시카즈 (일본위키디피아 사진)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 (1945년9월2일, 미해군 미주리호), 오른쪽 서 있는 인물이 가세 도시카즈 (일본위키디피아 사진)

가세와 고분샤는 1995년 3월에 ‘추한 한국인’ 2탄을 또 내놓았다. 책 출판에 얽힌 음모와 협잡 관계를 뉴스와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낱낱이 알렸다. 안팎의 취재 방해와 압력 탓에 2년이 걸렸다. 가세 무리가 끌어들여 이용한 ‘박태혁’은 서울대 출신도 유명 언론사 저널리스트 경력의 평론가도 아니었다. 돈에 쪼들리고 체류 비자에 궁한 60대 허풍 심한 한국인이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민중에게 저지른 악행의 역사를 부정하고 미화하면서 피해국 사람 입을 빌어 객관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것처럼 꾸미는 건 일본 우익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가세가 지난해 11월 85세로 사망하자 다수의 일본 언론이 애도했다. 안중근은 테러범, 이완용은 애국자, 일본 군대 위안부는 매춘부, 강제징용 피해자는 일본에서 건너온 노동자, 중국 난징 대학살은 날조한 허위…라는 가세 부류를 추종하는 정치인, 지식인이 일본에선 다수를 차지한다. 일본이 중요한 이웃임은 분명하다. 한일간에 사이 좋게 지내며 협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존중과 배려, 신뢰, 공동의 역사 인식이 깔리지 않았다면 모래성일 뿐이다. 가해 역사를 외면하는 일본에게 어느 피해국 대통령이 먼저 허리를 굽혔다. 자신 있고 대범한 포용일까, 자존감 뭉갠 굴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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