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한양문고주엽점에서 독자들과 만나
고향 구례로 내려가 마음의 벽 허물어
“문학, 머리 아닌 온 삶으로 쓰는 것”
[고양신문]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가 1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주최 측은 “요즘 핫한 작가여서인지 신청 마감이 몇 시간 만에 끝났고, 수십 명의 대기자들이 몰렸다”고 전했다. 강연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고 유쾌한 감동이 있었다.
정지아 작가는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등단했고,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다. 소설집으로는 『행복』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고,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자전적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의 질곡을 유머러스하게 들려주는 작품이다. 주제와 내용은 무겁지만 문체와 표현은 재미있다. 특히 유시민 작가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현재 25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다.
행사 당일, 전남 구례에서 올라온 작가는 “빨치산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저는 자본주의를 사랑한다”면서 “자본주의는 시간이 중요한데, 화창한 봄날에 꽃구경 대신 저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작가는 빨치산의 딸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책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를 들려줬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는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이었다. 구례라는 좁은 동네에서 어른들이 자신을 짠한 눈빛으로 보는 것도 싫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데, 엄마를 졸라 아무도 모르는 서울로 이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도 빨갱이더라고요. 항상 감시를 받았고, 경찰들이 전셋집으로 찾아와서 쫓겨난 적도 있어요. 주위의 동정심에 자존심이 상했고, 내 잘못도 아닌데 설움 속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어요. 그런 시절을 거쳐 대학교에 갔지요.”
이런 상황이 누적되다 보니, 그는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까칠한 시티 걸’로 살았다. 경제적인 자립 이후에는 고향인 구례와는 별 연관 없이 살다가, 20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어머니를 돌봐 드려야 해서, 중앙대 교수직을 정리하고 구례로 내려갔다. 귀향 후에 그의 변화는 여러 방면에서 찾아왔다. 서울에서의 작가는 지적인 대화가 통해야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구례에서의 작가는 달라야 했다.
구례는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었다. 누구든지 아무 때나 찾아오고 손님을 맞을 때도 격식이 필요 없었다.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에 나오는 떡집 언니는 실제 인물이고요. 중졸인데 훌륭한 사람이에요. 저는 그로부터 타인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정성이라는 사실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정작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평소에 거리를 두고 살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우렁각시처럼 나서서 모든 일을 해결해 줬다. 그 이후, 주변의 누구 하나도 허투루 볼 수가 없게 됐다.
시련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다. 그는 오랫동안 비관주의자로 지냈는데, 지나고 보니 작가로서는 축복과 같은 시기였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저는 ‘하드락을 장착하고 태어난 인물’이죠. 인간과 역사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거에요. 여성 작가치고는 강력한 서사, 선이 굵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된 거지요. 고통이 한 인간을 성숙시킨 거예요. 인간에 대해서도, 고통에 대해서도 마음이 열렸어요.”
일상의 재발견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일상이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 된 것이다. 그가 망가지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이 그의 일상을 따뜻하게 채워준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엄마에게 최고의 딸이고 가장 예쁜 딸이고 제일 멋진 딸이었다. 부모님의 지극정성한 사랑이 그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시련을 견디는 힘을 길러준 것이었다.
“어느 사이에 사랑이 제 벽을 허물어뜨렸고, 사람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까 빨치산 아버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 이야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구례에서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쓰지 못했을 거예요. 제 마음이 열리니까 사람들 마음이 열리고, 그 마음이 독자분들께도 다가간 게 아닌가 싶어요.”
구례에서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그는 “문학이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고, 온 삶으로 써 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구례를 지키고 있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장차 어머니의 이야기도 쓸 예정이라니, ‘어머니의 해방일지’가 기대된다.
강연을 들은 한 참가자는 “작품에 대해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다. 중학생 딸에게도 읽어보라고 추천할 생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행사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하고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주관하는 ‘오늘의서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