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천 조각가 7번째 개인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6월 4일,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고양신문] 임승천 조각가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초기 작품 '뱃머리가 세 개인 배', '눈이 세 개인 소년’ 등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줬다. 작가는 오랫동안 가상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임 작가의 개인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가 헤이리예술마을에 위치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대표 이수문)’에서 진행 중이다. 9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 ‘잃어버린 고리’는 진화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다. 진화상의 프로세스를 설명할 때 반드시 필요하지만 찾을 수 없는, 분실된 구간을 뜻한다.
‘양궁선수 안산’에게 영감 얻기도
작가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을 ‘표적이 된 여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사회 전반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궁선수 안산이 모델인데요. 당시 헤어스타일이 숏커트라는 이유로 성적 정체성에서 가십거리가 됐죠. 온 국민을 자랑스럽게 한 양궁 3관왕인데, 그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회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다룬 작품으로는 ‘In House’가 있다. 팬데믹 시기의 기억을 담은 조각이다. 눈, 코, 귀와 팔다리가 달린 집 모양의 작품은 당시의 상황과 불안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각각 1층과 2층, 두 곳에 설치되어 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하나는 단색이고, 다른 하나는 컬러로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로테스크한 느낌에서 점차 애처로운 느낌을 가지게 된다.
희로애락의 표정을 담은 작품, ‘고리Ⅰ’과 ‘고리Ⅱ’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리Ⅰ’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들이 자기 안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희노애락 4개의 감정은 서로 투쟁하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사각의 링 꼭지점에 걸쳐 있는 붉은 실은 그 감정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고리Ⅱ’에서는 개인의 감정이 집단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회 현상에 대해 대중이 드러내는 직관적인 감정을 표현했는데요. 그들은 하나처럼 보이지만 하나일 수는 없어요. 독립적인 개체로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연결돼 있고요. 그래서 한 명이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모두 넘어집니다.”
“균형과 조화는 영원한 과제”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밟고 서 있는 작품 ‘붉은 발’도 특이하다. 작가는 코로나 기간 중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고 한다. 밤에 윗집에서 내는 소음 하나하나가 모두 거슬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와 아내가 바닥을 쿵쿵거리며 다니는 걸 보았다. 그동안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말과 행동 또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일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두 주체가 힘을 겨루고 있는 ‘Balance’라는 작품은 개인과 사회, 국가의 욕망을 대변한다.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는 두 개의 주먹은 붉은 실을 쥐고 있다. 둘을 연결하는 이 실은 늘어졌다 당기기를 반복한다. 흡사 ‘욕망의 저울질’ 같다.
“생각이나 속도에서 균형이 필요한데요. 제 작품 속 양쪽의 속도는 달라요. 균형이란 유토피아 같아요. 현실 속에서 완벽하게 균형이 맞는 관계는 없잖아요. 바닥에 널브러진 실은 ‘균형에 다다르지 못한 욕망’을 의미합니다.”
균형과 조화는 우리 세대에서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다음 세대에서라도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그는 작가의 역할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관객의 역할은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판단과 상상력이 작품에 더해졌을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해답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일련의 현상만 보여줄 뿐 대안을 제시해 줄 수는 없지요. 앞으로도 현실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화이트블럭 레지던시 지원 활동 결실
수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임승천 작가는 한국 구상미술대전 특선, 구본주예술상, 성곡 미술관 ‘내일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인천아트아카이브 인천미술은행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화이트블럭 김진영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화이트블럭 레지던시 입주작가 후속 지원 활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행사”라며 “임 작가는 3기 입주작가로, 여러 굴곡을 겪으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무척 반갑다”고 소개했다.
2011년에 오픈한 화이트블럭은 카페와 갤러리, 아트숍을 겸한 아트센터다. 그동안 수십 명의 국내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지원했고, 충남 천안에도 스튜디오를 마련해 신진 작가 발굴 사업에 힘쓰고 있다. 4월 첫날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6월 4일까지 계속된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72
문의 031-992-4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