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의 발랑까진]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

[고양신문] 4월 12일,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학교폭력 전학 기록을 4년까지 보존하고, 대입 정시에 반영하는 것을 주된 골자로 삼았다. 정순신 전 국수본부장의 아들은 학교폭력으로 징계처분을 받았음에도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이 사실은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샀고, 입시제도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능시험 성적이 절대적인 정시 전형 때문에 학교폭력 전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입시 반영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의 대책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가 부모의 권력을 동원해 자신의 가해 사실을 감추려 했던 현실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대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학교폭력에 대한 입시 반영을 강화하는 것이 정말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학교가 입시 성공만을 목표로 삼는 한, 학교폭력은 앞으로도 은폐될 것이다. 2018년, 서울의 모 외고에서 남학생이 같은 반 여학생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저지른 사건이 고발되었다. 그러나 해당 외고는 가해자에게 사회봉사 수준의 경미한 처벌을 내렸으며, 심지어는 징계가 가해자의 수능 이후에 이뤄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학교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을 성과로 삼고, 높은 성적과 사회적 지위를 지닌 학생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소위 '모범생'의 학교폭력은 '혈기 왕성한 남자애들의 문제'나 '사춘기에 있을 법한 일탈'로 축소된다. 

입시 반영 강화는 학교폭력을 음지화할 뿐이다. 징벌과 사법적 절차가 강조될 때, 일상 속의 차별과 폭력은 은폐된다. '생활기록부 기재'가 학교폭력에 개입하는 기준이 될 때,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 수준'의 폭력은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신고 등의 사법적 절차를 결심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나 가해자가 불분명하고 집단적인 공동체 차원의 폭력도 걸러진다. 거르고 거른 자리에 남은 것은 생활기록부 기재를 막기 위해 더욱 치열해질 법적 공방과 '대학 진학에 해가 되지 않는 폭력은 괜찮다'는 교훈일 것이다.

오히려 '입시 반영'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교육 당국은 입시제도가 '공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고, 입시로 인해 훼손된 교육적 가치를 회복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입시를 이유로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변화해야 하는지, 검사권력 등 사회 고위층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교육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폭력은 학교에만 있지 않다. 입시제도를 넘어, 청소년이 폭력의 피·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학교는 사회와 격리된 공간이 아니고, 학생은 학교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학교폭력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학교밖 청소년 지원 부족 등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여건에 기인한다. 입시제도 안팎을 둘러싼 사회적 불평등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학교폭력 대책은 '음지화'의 또다른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연속 수다회 ‘학교 가기 싫은 날’ 현장사진. 위티(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는 2023년 4월부터 7월까지 석 달 동안, 학교폭력을 주제로 연속 수다회 ‘학교 가기 싫은 날’을 개최하고 있다.
연속 수다회 ‘학교 가기 싫은 날’ 현장사진. 위티(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는 2023년 4월부터 7월까지 석 달 동안, 학교폭력을 주제로 연속 수다회 ‘학교 가기 싫은 날’을 개최하고 있다.

아파도 참아야 해서/ 친구가 적으로 변하는 곳이라서/ 모든 행동을 허락받아야 해서/ 매번 평가의 대상이 되어서

4월 1일, 위티(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연속 수다회에서 참가자들이 적은 ‘학교 가기 싫은 이유’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사람에게도,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에게도 학교는 '가기 싫은/싫었던' 공간이고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공간이다. 아파도 참아야 하는, 친구가 적으로 변하는, 모든 행동을 허락받아야 하는, 매번 평가의 대상이 되는 공간에서 어떻게 ‘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학교폭력 이전에 ‘폭력적인 학교’가 존재한다. 바꿔 말하자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것은 개별 학생이 아닌 학교 현장 전체의 ‘폭력성’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이제라도 ‘입시 반영 강화’가 아닌 ‘입시경쟁 축소’라는 제대로 된 시작점을 찾기를 바란다.

※ 위티(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는 2023년 4월부터 7월까지 석 달 동안, 학교폭력을 주제로 연속 수다회 ‘학교 가기 싫은 날’을 개최하고 있다. 이 수다회는 매 회차마다 참석을 원하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신청 링크: http://apply.do/8rfA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