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거목, 김언호 한길사 대표
사진집 ‘지혜의 숲으로’ 발간
책 찾아 떠난 긴 여행에서 만난
세상 곳곳 책의 공간들 담아
4월 23일까지 법원도서관 전시
[고양신문] “종이책 없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답할 수 있게 합니다. 책이라는 것은 온갖 얘기가 다 들어가 있다 보니, 보면 볼수록 신비로워요. 책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건 책의 정신을 탐험하는 작업이기도 하죠.”
지난 3월 20일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사진집 ‘지혜의 숲으로’가 발간되었다. 사진집에는 김 대표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만난 책의 공간이 담겨 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올해로 47년째 약 3500권의 책을 펴냈다. 김 대표는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찾아내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전부다. 출판인으로서 책의 세계를 계속해서 발견하고 있다. 책 사진을 찍는 것도 책을 발견하는 작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언호 대표가 처음 책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1987년 네팔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히말라야를 걷던 중 길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혜의 숲으로’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후 부산 보수동의 책방 골목부터,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이 머물렀던 남경의 도서관, 500년 된 파리의 서점, 가업을 물려받은 세 자매가 운영하는 뉴욕의 서점과 1930년대의 영화관을 개조한 책방 등 여러 나라에 자리한 책의 공간, 책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 대표는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넨 북스토어’와 일본의 ‘이시카와 현립도서관’을 꼽았다. 영국 유명 일간지 가디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방’으로 꼽은 곳이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넨 북스토어’다. 이곳은 800년 전 성당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이 성당을 찾지 않으면서 다른 공간으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모터쇼 전시장, 권투경기장, 창고를 거쳐 책방으로 변신했다. 김 대표가 지난 설에 다녀온 이시카와 현립도서관은 작년 7월 개관했다. 전 세계 건축가들이 6년 걸려 만들었다는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입소문을 탔다. 계단으로 이어진 서가가 원형 홀을 크게 둘러싸면서 로마의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혜의 숲으로’에는 약 3만 개의 책이 등장한다. 평생 책을 만든 사람이 발견해낼 수 있는 풍경이 담겼다. 책을 만들면서, 책을 찾으러 가서, 여행지에서 등 47년 동안 책을 만든 출판인의 행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는 어떤 책을 만들고 읽을 것인지 고민하며 여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사진집에 담긴 공간을 설명하며 책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책이 존재하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워요. 책은 한 권도 아름답지만 여러 권이 모여 있으면 더 아름다워요. 책은 고유한 빛깔과 목소리를 갖고 있어요. 그 책들이 모인 걸 책들의 합창 소리라고 불러요.”
김 대표는 종이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삶에 책이 없어도 살아나갈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대답하는 그 과정이 독서예요. 최근에 와서 다시 종이책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지식과 정보를 찾아낼 수 있지만, 종이책이 담아내는 지혜는 찾을 수 없죠. 이번 사진집과 전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종이책의 귀중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김 대표는 종이책이 삶의 지혜를 가져다줄 수 있는 만큼, 사람들의 일상에 책이 스며들기 위한 책의 공간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고층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 박물관, 극장, 도서관, 서점과 같은 문화 공간이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책과 그 공간이 한 도시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한다는 걸 느꼈어요. 책은 우리의 정신을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힘을 가지고 있어요. 100만 시민이 사는 고양시에도 지역을 대표할 도서관이 있어야 합니다.”
김 대표의 전시를 보고 다시 종이책을 들었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지혜의 숲으로’는 사람들을 다시금 종이책 사이로 끌어당기기도,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결심하게도 한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향해 출판인으로서 독자들의 책 읽기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한 시대 출판문화는 출판사와 저자뿐 아니라, 독자들까지 모여야 완성된다”고 이야기했다.
김언호 대표의 ‘지혜의 숲으로’ 사진집에 실린 사진은 고양시 장항동에 위치한 법원도서관에 전시되었다. 법원도서관 안 책장에 걸린 사진들은 지난 10일부터 시작해 오는 23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